미국 진출, 언제 어떻게? ‘주간실리콘밸리’ 박이안 파트너에게 들어봤습니다

“‘정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진출하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본인에게 가장 편하고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미국 진출을 꿈꾸거나 실제로 진출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한국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한편으론 이 행렬에 합류하고 싶으면서도 진행 방법이나 현지 적응 등을 우려해서 주저하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 현지 투자자들과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또한 고민거리다.

앤드류 응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의 어드바이저로 공식 일정에 참석하고 있는 박이안 파트너 (출처=KBS)

박이안 프라이머사제 파트너는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및 투자 유치를 돕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현지 중소 VC와 한국투자공사(KIC)를 거쳐 지난 5월,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스타트업 및 미국 내 한국계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프라이머사제에 합류했다. 실리콘밸리 현지 이야기와 최신 테크 소식을 전달하는 뉴스레터 ‘주간실리콘밸리‘의 운영자이자, 인공지능(AI) 대가 중 한 명인 앤드류 응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의 공식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박 파트너는 얼마 전 ‘AI 서울 정상회의’, ‘프라이머사제 AI 데이’ 등 응 교수의 공식 일정을 돕고자 한국을 방문했다. 다양한 스타트업/VC 관계자와도 만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와 줌 미팅으로 만나 미국 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 대표가 궁금할 법한 지점을 물어보았다.

Q1. 미국 진출, 꼭 해야 할까?

먼저 국내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파트너님은 미국 진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는 미국에 진출하지 않을 만한 회사는 검토를 잘 안 하는 편입니다. 프라이머사제는 한국에 절반, 미국에 절반 정도 투자하고 있지만, 웬만하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회사 위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대표님들의 꿈의 크기’라고 생각합니다. 즉, 정말 큰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글로벌하게 활동하고 싶은 분은 미국 진출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구매력이 충분하고 인구도 많으면서 가장 단일화된 시장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중국이나 인도를 떠올리실 텐데요. 중국은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규제 측면에서 더 성장하기 쉽지 않은 시장입니다. 그리고 인도는 생각만큼 단일한 시장이 아닙니다. 인구가 많긴 하지만, 주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거든요. 큰 시장에서 큰 결과를 내고 싶은 분은 나오셔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한편으론 워낙 다양한 문화가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이라는 기본 위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다양한 문화가 쌓여 있달까요. 즉, 미국에서 성공한 프로덕트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글로벌을 꿈꾸는 창업자의 첫 번째 타깃은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많을 뿐만 아니라 금융 시장이 발달했고, 그만큼 벤처 시장도 큽니다. 자연스레 펀드레이징 규모가 크고, 엑시트 기회도 많습니다. IPO나 M&A 측면에서 봐도 굉장히 큰 시장인 만큼, 훨씬 더 편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에 진출하면 좋겠다 싶은 업종이나 기업이 있을까요?

굳이 미국 회사들이 더 잘하는 분야에서 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굉장히 잘하는 한국 B2B 서비스 회사가 많습니다. 눈에 띄는 B2B SaaS를 운영하는 대표님들이 미국 감성에 굉장히 익숙하신 것 같고요. 아무래도 문화나 감성적인 차이에 조금 덜 민감한 편이죠. 그래서 B2B SaaS는 미국에 진출하기 보다 수월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잘하는 걸 가지고 나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콘텐츠나 뷰티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동안 미국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프러덕트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죠. 요새 잘 나가는 파리바게뜨는 딱히 현지화하지도 않았는데도 정말 잘 나가고 있고요. 메디컬 디바이스 같은 쪽도 우리나라 기업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습니다.

(출처=셔터스톡)

Q2. 미국 진출, 언제쯤이 좋을까?

그렇다면 어느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이 미국에 진출하는 게 좋다고 보시나요?

조금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플립이든 진출이든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선호하는 기업은 처음부터 글로벌을 생각하고 만든 팀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성공한 회사가 미국에서 똑같이 성공하기는 진짜 쉽지 않거든요. 한국에서 체득한 소위 성공방정식이 있는데, 미국 시장에 딱 들어가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시도했다가 안 되면 매우 많이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그대로 한국으로 유턴하는 경우도 많고요.

한국 비즈니스가 커진 상태에서 미국으로 가게 되면, 세금 문제도 있고, 팀원도 나뉘니 사실상 회사 두 곳이 되는 셈입니다. 한국과 미국 비즈니스가 각각 따로 돌아가게 되고요. 팀원 간 불화가 생기기 쉽습니다. 한국 팀원은 미국을, 미국 팀원은 한국을 이해 못하게 되니까요. 그러면 동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Q3. 서비스 고도화가 먼저인가, 현지 경험이 먼저인가?

해외 거주 경험 없이 온전히 한국에서 자라서 사업을 시작하신 분들의 고민입니다. 미국이 좋은 건 알겠는데, 미국에 산 적도 없고, 영어를 잘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 6개월 체류하면서 그쪽 경험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 시간에 프로덕트를 좀 더 가다듬어 발전하는 게 좋을까요?

먼저 한국에 좋은 지원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기부에도 있고, 과기부에도 있고, 한국 이노베이션 센터도 있죠. 500(Five Hundred)도 있고, SBA와 IBK도 있네요. 이런 행사에 가보기만 해도 정말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아산나눔재단에서 실리콘밸리 코리빙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레이퍼 대학(Draper University)처럼 미국에서 살면서 사업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짜 많습니다. 생돈 내고 와서 무작정 부딪혀 봐야 한다는 생각은 비추입니다. 정보를 많이 수집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가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런 프로그램에서 다 떨어지면, 하지 말라는 건가요’라고 물어보실 수 있는데요. 냉정하게 말해서 이런 프로그램에 모두 떨어졌다면, 프로덕트를 좀 더 갈고 닦아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봅니다.

프러덕트를 갈고 닦기 전에 현지 경험부터 해보고 싶으시다면, 어떻게든 현지 미팅을 잡고 오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드콜 보내면 반응 오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니면 제게 연락하셔도 됩니다. 프라이머사제는 언제나 미국에 오고 싶은 좋은 창업자를 찾고 있습니다(웃음). ‘저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아니면 ‘이런 걸 상담해보 고 싶어요’라고 연락주시면, 언제든지 답변드리고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정리하자면, 정부나 여러 기관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보시면 좋겠고, 콜드콜로도 충분히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4. 미국 VC,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미국에 진출하기로 결심한 스타트업 대표님의 다음 고민은 ‘어디서 어떻게 투자자를 만나냐’ 입니다. 한 달씩 머무르면서 무작정 콜드콜을 해야 하는지, 어떤 창구를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대표님 입장에서 생각하면 크게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콜드콜, 웜인트로, 미디어,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킹 이벤트입니다.

먼저 ‘콜드콜(Cold calling)’은 그냥 이메일을 보내는 겁니다. 자기 회사 소개하면서 미팅을 잡는 방법이고요.

‘네트워킹 이벤트’는 데모데이 같은 곳에 참여하는 겁니다. 미국에선 이런 VC들과 만날 수 있는 이벤트가정말 많습니다. 액셀러레이터를 통해서 접점을 늘려나가면 좋겠네요.

(제공=박이안)

그리고 ‘미디어’는 어느 정도 성과가 좋아야 하는데,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탑 100 AI’ 리스트 보셨죠? 라이너를 비롯해 주목받는 AI 기업이 다 올라가 있잖아요. 이런 곳에 올라가면 됩니다. 당연히 정말 어렵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미디어 노출을 늘리면 좋죠.

‘데이터베이스’, 그러니까 피치북(PitchBook)이나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같은 서비스에 올라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회사를 찾는 VC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렇지만, 미국 현지 VC는 아예 ‘미국’으로 필터를 걸어버리고 시작합니다. 본사가 한국에 있으면 안 뜨죠. 본사 소재지가 미국이면, 데이터베이스 망에 걸렸을 때 연락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사람들이 검색했을 때 뜰 수 있도록 셋업을 해 놓아야 인바운드가 있겠죠.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웜 인트로(Warm Intro)’ 입니다. 아는 분을 통해서 소개받고, 아는 네트워크를 거쳐 만나는 게 가장 좋죠. 네트워킹 이벤트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커지는 식이거든요.

참고로 이걸 가장 잘 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프라이머사제입니다(웃음).

Q5. VC는 어떤 기업을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할까?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에게 프라이머사제는 꼭 만나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파트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프라이머사제를 비롯한 투자사는 어떤 기업을 좋게 보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을 기대하면서 ‘이 사람은 우리 하우스에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하우스 안에서도 파트너마다 성향이 굉장히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고요. 일단 일종의 기본 공식이랄까요. ‘시장이 크다’, ‘똑똑한 창업자/팀’, 그리고 ‘초기 트래픽 숫자’는 얼리 스테이지 투자자에게 꼭 말해야 하는 세 가지로 꼽힙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뻔한 답변이죠.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게 들어가서, 시장을 확장하거나 아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 ‘카테고리 디파이닝 컴퍼니(Category defining company)’를 찾으려고 합니다. 시장이 크다는 말을 바꿔 보자면, 이미 진출한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말이잖아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경쟁할 필요 자체가 없죠. 물론 찾기 쉽진 않습니다.

다음으로 창업자인데요. 본인이 풀고 싶은 문제에 일종의 집착을 가진 분이 정말 좋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집착과 어떤 확신, 그리고 열정적인 에너지로 도전할 수 있는 분입니다. 창업은 정말 힘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이드로 창업하겠다며 친구들과 준비해 본 적이 있는데, 문턱 하나하나가 너무 높더라고요. 그렇게 힘든 데다가 큰 리스크를 져야 하죠. 굉장히 포기하기 쉬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쇄창업가가 될 것 같은 분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저한테 IR 하신 분 중에선 이미 기존 회사는 접고, 새 회사를 만들어서 펀드레이징하신 창업가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떤 문제에 대한 집착이 있어요. 단지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고자 하시는 거죠.

창업가가 지금 생각하는 솔루션, 혹은 프러덕트는 절대 최종 버전이 아닙니다. 문제가 정해져 있다면, 솔루션은 계속 바뀔 수 있습니다. 생각했던 솔루션이 작동하지 않을 때, 계속 바꿀 수 있는 그런 유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단 하나, ‘이 문제를 풀고야 말겠다’는 집착만 빼고 말이죠. 이런 분들을 굉장히 존경하고, 같이 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Q6. 미국에서는 정말 토론식 피칭을 많이 할까?

미국 투자자를 만난 경험담에선 ‘토론식 피칭을 많이 한다’, ‘일방적인 피칭보단 대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보입니다. 이런 과정이 정말 중요한지, 중요하다면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먼저 미국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미국은 좋은 스타트업과 창업자에게 투자자가 몰리는 구조입니다. 한국보단 VC가 ‘갑’인 경우가 좀 덜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VC들이 창업자가 보낸 피칭덱이나 IR 자료를 다 공부하고 옵니다. VC에게 제일 중요한 건 시간이죠. 피칭덱 보는 데는 5분도 안 걸리고, 이 자료로는 투자를 해도 될지 감이 안 옵니다. 그런데 창업자를 만나면 적어도 15분, 보통 30분에서 1시간을 씁니다. 그렇게 만났는데 별로라고 5분 만에 끊어버린다? 창업자가 갑인 사회에서 VC 평판이 정말 안 좋아집니다. 그래서 그 30분을 유용하게 쓰고자 토론을 많이 하죠.

동시에 대표님에게 투자자가 왜 만나고 싶어 해는지, 그리고 왜 대표님의 문제에 관심 있는지, 투자자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만이 아니라 대표님도 투자자가 마음에 들어야 하거든요.

개인적으로도 토론을 더 좋아하는데,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딱 나옵니다. 이분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말이죠. 본인 프로덕트와 회사에 잘못된 게 없더라도 끊임없이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질문에 답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신 분들은 태가 납니다. 허점을 파고들었을 때, 그에 대한 답변이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그리고 그 답변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인지 보면, 이 창업자가 얼마나 진심이고 집착이 있는지 보입니다.

(제공=박이안)

Q7. 미국 투자자들은 정말 실패를 관대하게 보나?

‘신도’라는 단어를 듣고 보니, ‘뭔가 이루어지기 전에 믿고 따라간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요. 처음엔 실체도 없고, 실패 확률도 굉장히 높은 만큼, 그 믿음이 깨졌을 때 어떻게 정리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스타트업씬은 한국과 좀 다르다, 스타트업의 실패와 재도전에 더 너그럽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런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미국 시장만 말씀드리자면 확실히 관대한 편이라고 봅니다. 보통 VC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절반 정도가 그냥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안 좋게 보는 시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LP들의 소중한 돈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벤처캐피탈 자체가 일종의 모험 자본이잖아요. 절반 정도는 망한다는 가정을 기본값으로 깔고 가야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실패에 그렇게 큰 의미를 주진 않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속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 가능성 있는 회사를 찾고 싶다고 말씀드린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망하는 회사가 많지만, 몇 곳은 아웃사이즈 리턴을 해낼 테니까요. 극소수 회사가 전체 투자금의 30배, 300배를 벌어온다는 아이디어가 모험 자본, 벤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미국은 창업자가 갑에 더 가깝습니다. 시장에 돈이 많고, 연쇄창업자가 많아서 다음 펀딩에 계약해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투자자 평판이 진짜 중요합니다. 와이 컴비네이터 같은 곳에 문서화된 투자자 평가가 돌아다니고 있어요. 어느 펀드를 조성한 누구는 이렇더라, 몇 점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투자자 입장에선 창업자의 실패에 관대하고요.

미국은 LP가 전적으로 믿어주는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공공 LP가 많은 한국과 달리, 미국 시장에 민간 자본이 많아서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Q8. 창업가와 투자자, 어떤 관계인가

위 질문과 이어질 텐데, 창업가와 투자자의 관계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이 될까요?

저는 제가 ‘스타트업 대표님의 신도’라고 생각해요. 그 대표님의 비전을 믿어야 하니까요. 사실 그 비전이 뭐랄까, 현실성 없을 때도 있습니다. 저부터 믿고 따르고 도와드리고 어떻게든 현실화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고난의 행군 같은 그분들이 가시는 길에 실리콘밸리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빌려드리는 신도 같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VC가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스타트업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저는 대표님보다 본인 사업을 더 많이 고민해 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대표님만큼 거기에 인생을 건 사람도 없고요. 그래서 그 대표님의 비전을 믿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 주는 역할인데, 그냥 치어리더보단 더 적극적인 존재이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코칭이라든지 ‘VC가 창업자를 가르친다’라는 말이 싫습니다. 솔직히 상당수 VC들이 뭘 해봤겠어요? 얼마나 뭘 안다고 창업가를 가르치고 코칭한다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누구보다 많이 고민한 대표님의 말을 믿어드리고, 펀드레이징을 도와드리고 따라간다는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무래도 VC가 정보 접근성은 더 높을테니, 트렌드와 큰 그림을 알려드리면서 서포트하는 역할이 중요하죠.

작년 초에 펀드레이징을 준비하시던 컨슈머 스타트업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대표님에게 “앞으로 컨슈머 쪽은 펀드레이징이 힘들어질 것 같으니까 훨씬 큰 라운드로 해보시라”라고 말씀드렸어요. 프라이머사제로 이직한 뒤에 다시 만났는데, 대표님이 ‘그때 그 말을 안 들었으면 지금 회사가 거의 없었을 거다, 정말 고맙다’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Q9. 투자자가 생각하는 좋은 투자자는?

전 ‘주간실리콘밸리’ 뉴스레터 안에서 ‘좋은 VC란?‘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는데요. LP로 활동하면서, 그리고 VC 파트너로 직접 뛰면서 생각한 ‘좋은 투자자’는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고민이 진짜 많은데요. 제가 생각하는 건 어쨌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진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게 VC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VC를 바라보는 시선에 거품이 많다고 봅니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 VC라는 직업이 굉장히 미화됐다고 생각해요. 갑의 지위에서 본인의 믿음과 감으로 아무것도 없는 회사에 투자해서 성공하는.. 이런 식으로 미화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공부해서 빨리 투자 결정을 내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트렌드를 알아야 하고, 계속 공부하고 익혀야 합니다.

크리스 예 블리츠스케일링 벤처스 대표와 박이안 파트너 (제공=박이안)
크리스 예 블리츠스케일링 벤처스 대표와 박이안 파트너 (제공=박이안)

두 번째, 투자자가 직접 사업을 하진 않잖아요. 그러니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은 손 놓고 응원해 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창업자를 믿고, 한 발 뒤에서 응원하고 돕겠다는 마인드가 훈수 두는 쪽보단 좋은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힘들 때 공감하며 돕는 인간적인 면도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VC도 주식처럼 데이터로 하면 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는데요. 하면 할수록 ‘이건 정말 사람 비즈니스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창업자가 힘들 때 처음 전화를 걸고 싶은 VC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그런 VC가 정말 좋은 투자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VC도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는 수익도 수익이지만,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의 시작을 응원해 주는 역할이잖아요. ‘돈이 될까’만큼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국방 쪽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합니다. 포르노나 온리팬스 같은 서비스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사회에 플러스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계속 자문하게 됩니다.

종합해 보자면, 1) 사회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2) 끊임없이 공부하면서도 3) 창업자를 응원할 수 있는 투자자가 되겠네요. 지적인 응원도 있지만, 감정적으로도 말이죠. 약간 F여야 한다? 사실 전 극 T인데, 어떻게든 F가 되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10. 나와 케미가 잘 맞는 투자자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창업자 입장에서 케미가 잘 맞는 투자자를 찾고 싶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투자자를 판단하는 요소는 굉장히 무궁무진할 텐데,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제가 뉴스레터를 쓰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전문성, 그리고 제 관심을 어필하려는 거죠. 투자자와 토론 형식으로 이야기하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도 그 투자자가 어느 정도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있고, 어느 정도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뉴스레터든 다른 형식이든 본인 생각을 꾸준히 공유하는 투자자라면, 그런 콘텐츠를 찾아서 이 사람이 내가 하려는 것에 이해도가 깊은가 생각해 보시면 좋겠네요.

박이안 파트너가 운영하는 뉴스레터 ‘주간실리콘밸리’ (출처=메일리)

그리고 퍼스널 케미스트리가 생각보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보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 스레드에 짧게 쓰기도 했는데, 이력서에 나와 있는 경력이나 학력만으로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건 굉장히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 손쉽게 사람을 예단할 수 있는 지표니까요.

만약 VC가 본인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고민에 대해 이야기 해보시는 게 정말 좋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문제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했을 때, ‘그건 대표님이 알아서 하셔야죠’라고 나온다면 정말 돈만 주는 VC겠죠.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대표님은 어떠세요?”, “그쪽으로는 제가 아는 분이 있는데 연결해 드릴까요?’ 이런 게 제가 하는 역할입니다.

제 경우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대표님을 만났다면,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서 보내드려요. 초반에는 제 경력과 수상 이력, 주요 네트워크 같은 자랑을 막 쓰고요. 다음으로 제가 왜 대표님의 비즈니스를 좋아하는지 씁니다. 그리고 대표님과 무엇을 하고 싶고, 대표님의 비즈니스가 잘 되리라 생각하는 이유를 적습니다. 그러면 정말 좋아하세요. 물론 저 기분 좋아지라고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자기 사업에 대해 공유해 준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굳이 줌 미팅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카톡도 괜찮고, 전화 통화도 괜찮으니 마주치는 시간을 많이 보내시면 좋습니다. 그렇게 퍼스널 케미스트리가 잘 맞아서 대표님도 편하게 전화할 수 있고, 투자자도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미국 진출을 꿈꾸는 창업가에게 하고 싶은 말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미국 진출을 노리는 창업가에게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미국 진출은 프라이머사제와 함께 하시면 됩니다! A부터 Z까지 저희가 다 해 드립니다(웃음). 농담이지만 진담이기도 합니다.

넥스트라이즈 2024 세션에 참석한 이기하 프라이머사제 대표[가운데] (출처=법무법인 미션)
넥스트라이즈 2024 세션에 참석한 이기하 프라이머사제 대표[가운데] (출처=법무법인 미션)

미국이 정말 네트워크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당당하게 경쟁해서 시험보고 합격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생각보다 네트워크로 돌아가는 지점이 많습니다. 지인 추천을 굉장히 믿어주고, 아는 사람끼리 나아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정답은 없지만, 길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하는 방법을 똑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했다더라 같은 이야기는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시고, 본인에게 가장 편하고 잘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이 매력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민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하신다면 콜드콜로 해결하시면 됩니다. 글로 내 의도를 깔끔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글을 쓰시면 되고요. 친구가 많아서 건너건너 박이안과 연결할 수 있다고 하신 분은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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