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만나 날아오른 케이뷰티

최근 블랙핑크의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APT.)’가 다시 한번 케이팝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고, 뮤직비디오는 조회수 3억뷰를 돌파했다. 한국 술게임인 ‘아파트 게임’을 즐기고, 영어식이 아닌 한국식 발음 ‘a-pa-teu’로 떼창하는 등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 깊숙이 들어오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케이팝은 음악 시장을 넘어 한국 문화 트렌드를 이끄는 명실상부 선두주자이다.

케이팝이 불을 지핀 국내 산업 중 ‘케이뷰티(K-Beauty)’의 성장세가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케이팝 아이돌의 화장법이나 메이크업 제품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결과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얼라이드마켓리서치(All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K-뷰티 시장 규모는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9.0%(CAGR) 성장해 2027년에는 139억 달러(약 19조 5559억)에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2023년 한국 색조 화장품 대미 수출 규모는 전년 대비 71% 성장, 2022년 1위였던 중국을 밀어내고 미국의 색조 화장품 최대 수입국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듯 케이팝 돌풍에 힘입어 한국 뷰티 업계도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케이팝과 케이뷰티가 어떻게 ‘윈윈(win-win) 관계’를 형성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정리해 보았다.

글로벌 아이돌 모델 발탁

우선 글로벌 아이돌을 모델로 발탁해 팬덤 효과를 얻는 전략이 있다. 프리미엄 비건 뷰티 브랜드 ‘달바’는 세븐틴의 호시를 아시아 글로벌 앰버서더로 선정했다. 달바 반성연 대표는 “달바는 프리미엄 글로벌 브랜드로 전 세계에 K-팝 위상을 알리고 있는 호시가 가진 프로페셔널하고 아티스틱한 이미지가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잘 부합한다”고 전했다.

달바는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 536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244%의 성장률을 보였다. 북미, 일본, 동남아, 유럽, 중국 등 세계 각 지역에서 매출이 오르며 글로벌 시장 전체에서 큰 폭으로 성장했다. 특히 일본에서의 매출이 120억대를 기록하며 최고 매출을 차지했는데, 이 중심에 호시가 있었다. 세븐틴은 일본에서 남다른 인기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 세계 3대 음악차트 중 하나인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13번 달성하며 해외 아티스트 최다 1위 기록을 경신한 그룹이 바로 세븐틴이다.

2024년 9월, 달바는 전광판과 랩핑 버스를 통해 시부야, 하라주쿠, 신주쿠 등 도쿄 일대와 오사카 우메다까지 주요 도시 곳곳에 호시의 얼굴을 내걸었다. 8월 31일부터 9월 12일까지 일본 최대 쇼핑몰인 큐텐과 라쿠텐 쇼핑몰 미스트 카테고리와 베이스메이크업 카테고리에서 달바의 제품이 1위를 기록하며 ‘호시 효과’를 노린 마케팅은 성공적으로 13일만에 30억원 매출을 이끌었다.

 

(출처 = 더블유 코리아)

아모레퍼시픽의 뷰티 브랜드 헤라는 2019년, 새로운 얼굴로 블랙핑크의 제니를 택했다. 그동안 배우 전지현을 내세워 30대 여성을 타겟팅했던 헤라가 지속된 성장 정체기로부터 반등을 꾀하며 내린 결정이었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 1020세대들에게 인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헤라가 추구하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지는 제니를 기용해 브랜드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자 한 것이다.

제니가 2024년까지 6년 연속 모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은 이 변화가 제대로 통했음을 보여준다. ‘제니 립스틱’으로 입소문을 탄 ‘스파이시 누드 글로스’는 2021년 아마존 입점 후 4개월 만에 립스틱 부문 판매 1위를 달성했고, ‘블랙쿠션’은 ‘제니 쿠션’으로 해외 인지도를 얻는 등 헤라는 제니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또 다른 대표 브랜드인 설화수는 블랙핑크 로제를 모델로 기용하고, 라네즈는 방탄소년단과 협업하는 등 아모레는 기존보다 타깃 연령대를 낮추고 국내를 넘어 북미 위주의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데 힘쓰고 있다.

(출처 = 헤라)

뷰티 관광 코스 유행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은 어떤 관광 코스를 따라갈까. 보통 경복궁, 남산 타워, 한강 같은 주요 스팟이 떠오른다. 이제는 ‘케이뷰티 체험’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인바운드 관광 플랫폼 ‘크리에이트립(Creatrip)’이 자사 관광 상품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2024년 1월과 2월 국내 뷰티 서비스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메이크업 전문 숍의 전년 동기대비 거래 건수는 650%, 거래액은 무려 3100%이나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관광 재단에 따르면 2023년 외국인 관광객이 미용 서비스 업종에 소비한 금액은 364억원으로 2019년과 비교하여 231% 가량 늘었다.

대표 상품으로 ‘퍼스널 컬러 진단’이 있다. 피부 톤, 헤어 컬러, 눈동자 색 등 고유한 신체 색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파악해 어울리는 화장법과 코디 등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이다. 봄 웜, 여름 쿨, 겨울 딥 등 자신에게 딱 맞는 톤을 찾고자 하는 국내 MZ세대들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케이팝 아이돌들에게도 퍼스널 컬러 진단이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블랙핑크, 몬스타엑스, 샤이니 키, 레드벨벳 슬기, 트레저, 있지 등 수많은 아이돌이 유튜브 채널에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업로드했다. 이를 접한 글로벌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한국 방문 시 이를 체험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2024년 상반기 크리에이트립 퍼스널 컬러 진단 예약 거래 건수와 거래액은 작년 동기 대비 130배 증가했고, 뷰티샵 거래 건수 중 퍼스널 컬러 진단은 약 63%를 차지했다. 홍대에 위치한 인기 퍼스널 컬러 진단 업체에는 하루 평균 30~40명, 월 1000명에 달하는 외국인 손님이 방문한다.

아이돌들의 퍼스널 컬러 진단 콘텐츠 (출처 = 유튜브)

말레이시아에서 온 나나는 방탄소년단의 팬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SNS에서 퍼스널 컬러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한국에 방문했을 때 직접 퍼스널 컬러 진단을 체험했다. 나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어울리는 제품 추천까지 받을 수 있어 한국에서 사가야 할 화장품을 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캐나다인인 캐서린은 자신의 여행 경험과 일상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공유하는 크리에이터이다. 그 또한 한국에서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숏츠로 업로드했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4250만을 돌파했다. 그녀는 “한국의 퍼스널 컬러 진단은 매우 철저하다. 지금까지 금색 악세서리를 착용해왔는데 나에게는 은색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한국 관광 코스로서 퍼스널 컬러 진단을 적극 추천했다.

퍼스널 컬러 이외에도 한국 스타일 메이크업, 헤어, 네일 및 피부 시술 등의 체험이 인기를 끌며 국내 관광 트렌드가 ‘케이뷰티 체험’으로 집중되고 있다.

(출처 = 크리에이트립)

케이팝과 함께 핫플로 등극한 올리브영

CJ그룹의 ‘올리브영’은 국내 뷰티 스토어의 판도를 뒤바꿨다. 단일 브랜드 로드샵 매장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올리브영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23년 1분기 기준 올리브영의 H&B 시장점유율은 71.3%에 이른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올리브영은 한국 방문 시 꼭 들러야 하는 장소로 꼽힌다. 대표 관광 상권인 명동 내 6개 지점의 2024년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168% 성장했고, 전체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한다. 올해 올리브영은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인천공항부터 명동까지 운영하는 전용 셔틀 버스 ‘올영 익스프레스’를 시범 도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케이뷰티를 대표하는 핫플레이스가 된 올리브영에게도 케이팝은 더 큰 시너지를 위해 놓칠 수 없는 요소이다. 2019년 6월, 올리브영은 ‘올리브영 글로벌몰’을 런칭했다. 전세계 150여개국 소비자를 위한 역직구 형태의 온라인 플랫폼이다. 2019년 3만명으로 시작한 멤버십 회원은 2024년 5월 기준 누적 160만명을 돌파했다. 국내 매장과의 차이점은 ‘K-팝 카테고리’이다. 2022년 올리브영 글로벌몰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르세라핌의 미니 앨범 ‘안티프래자일’이고, 그 다음은 국내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의 ‘잡티세럼’이었다. 판매 순위 내에 케이팝 음반 상품과 뷰티 상품이 고르게 자리했을 뿐만 아니라, 음반과 뷰티 상품을 동시에 구매한 고객이 전체의 76%에 달했다. 케이팝 아이돌과 노래로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 뷰티 제품으로까지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올리브영 글로벌몰에서 판매 중인 NCT DREAM의 앨범 (출처 = 올리브영 글로벌몰)

올리브영은 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명동 인근 매장에 K팝을 경험할 수 있는 복합매장을 열기도 했다. 올해 8월 문을 연 명동의 7번째 매장인 올리브영 명동역점에는 ‘K팝 전문 코너’가 신설되었다. 한터차트의 운영사인 한터글로벌과 손잡고 처음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K팝 앨범을 팔기 시작했다.

올리브영 명동 타운 (출처 = 올리브영)

올리브영은 최근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의 역명을 10억원에 사들였다. 2024년 10월부터 3년 간 성수역은 ‘성수(CJ올리브영)역’이 된다. 명동과 더불어 해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지역인 성수를 또 다른 케이뷰티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케이뷰티의 확장 가능성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며, 케이팝은 계속해서 그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인턴 기자 김성희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스타트업들의 고유한 비전과 차별화된 전략을 기사로써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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