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전 세계 기술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혁신의 장이다. 특히 많은 한국 기업과 기관이 이 무대에서 첨단 기술을 선보이며 글로벌 경쟁력을 과시해 왔다.
하지만 그 거대한 규모에 비해 실질적인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코엑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굳이 비싼 돈 주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나야 하나?’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상당하다.
기업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CES 참가를 결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까?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CES에 참가한 뒤에 어떤 효과를 누렸을까?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CES에서 주목받은 기업의 대표들을 만나보았다.
전기차 충전 플랫폼 ‘EV 인프라(EV Infra)’, 전기차 충전소 관제 솔루션 ‘EVi허브(EViHub)’ 등을 운영하는 ‘소프트베리’는 1월에 열린 ‘CES 2024’에 ‘K-STARTUP 통합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소프트베리는 EV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한 ‘EV 인프라 최적 충전경로 추천 서비스’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NH 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 만난 박용희 소프트베리 대표는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대기업 임원이나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홍보 효과가 컸다”라고 CES의 성과를 회고했다. 또한 “참가자와 네트워크를 쌓고, 시장 트렌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캐치하는 무대로 삼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처음 참가할 때, 가장 큰 장애는 ‘막연한 두려움'”
Q. 소프트베리는 상당히 긴 업력(2017년 설립)에도 불구하고, ‘CES 2024’가 첫 참가였습니다. 참가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
물론 이 전에도 생각은 있었지만, CES는 테크(기술)를 많이 다루는 곳이잖아요. 한국에서 이미 하고 있는 걸 보여주기보단 시장에 없었던, 그러니까 전기차와 관련된 기술을 접목해서 소프트베리가 시장에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CES 2024에 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저희가 중기부(중소벤처기업부)와 계속 연이 있었는데, ‘이번 CES에 가보지 않겠느냐’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비용이라든지 통역 같은 운영적인 부분에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해서, 한번 나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Q. 첫 참가인 데다가 신규 서비스까지 공개하다 보니 여러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돌이켜 보면, 막연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외국 분들도 많이 오시잖아요. 중기부에서 통역을 구해주셨지만, 영어로 기술을 설명하려니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전에 해본 적이 없으니까 더 어려웠죠.
그래서 지원받기로 한 1명 외에 영어가 되는 직원 3명이 더 가기로 했습니다.
Q. 그렇게 가게 된 CES에서 서비스 체험도 하고, 굿즈도 나눠주는 형식으로 부스를 꾸미셨죠. ‘이런 식으로 구성하면 반응이 올 것 같다’라는 가정을 하셨을까요? |
결정한 뒤에 현장 분위기를 알려주는 언론이나 기업 유튜브 영상을 많이 살펴봤습니다. 직접 운영했던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겠다’라는 경험치는 쌓을 수 있었죠.
그리고 저희가 CES는 처음이지만, 국내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많이 참여해 봤거든요. 그 경험을 바탕에 깔고, 무엇을 해야 조금이라도 눈에 띌 수 있을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초반의 열의를 유지하기 쉽지 않아”
Q. 그렇더라도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와는 다른 어려움이나 고난이 있었겠죠? |
일단 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브로슈어와 굿즈처럼 나눠주려는 물건을 모아 보니 무게가 상당하더라고요. 배너 같은 것도 준비해야 하고요. ‘혹시 사용하지 않을까’ 싶은 물품도 추가로 챙겨야 하죠. 준비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좀 하기도 했습니다.
Q. 처음 참가하는 분들은 특히 궁금하실 텐데, 샘플이나 굿즈를 잔뜩 챙겨갔다가 미국 입국 심사 과정에서 걸리진 않았나요? |
당연히 걸리는데, 굉장히 엄격하게 잡지는 않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1월 초에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오는 한국인은 대부분 CES 참가자니까요. 눈에 띄게 수상하지 않는 이상, 그냥 통과시켜 주는 분위기이지 않나 싶어요. 과거 이 시점에 오간 이력이 있는 분들은 더 쉽게 통과시켜 주기도 하고요.
Q. K-스타트업 통합관의 일원으로 가셔서 부스를 차리셨죠. 단독 부스를 차릴 때와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요? |
통합관은 ‘K-스타트업’이라는 큰 타이틀 안에 뷰티,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등 작은 하위 테마가 들어간 형태입니다. 굉장히 작은 구획에서 본인 솔루션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노트북 하나만 올려놔도 꽉 차 보이는 자리라서 내 솔루션이나 제품을 표현하기에는 협소할 수 있죠.
첫날은 세팅하는 시간이니까 직원들과 가서 뚝딱뚝딱 부스를 꾸미고요.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는데, 이 비싼 행사장에 그래도 회사 부스를 차려놨으니 얼마나 의지가 활활 타오르겠어요. 한발 물러서서 보면 호객행위 하나 싶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굿즈 나눠주고 열심히 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몸과 정신이 피곤해지면서 기세가 꺾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초반의 그 열의를 유지하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부스만 꾸미고 아예 보이지 않았던 팀도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통합관의 일원으로 참가해서 작은 부스만 운영하는 스타트업은 3명이 적정 인원인 것 같습니다. 두 명이 부스를 지키고, 한 명은 쉬면서 다른 부스 구경도 하는 형태죠.
Q. 잘 운영한다는 생각이 든 부스는 없었나요? |
제가 모빌리티 쪽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이쪽 테마에 들어가는 브랜드를 유심히 보게 됐는데요.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액셀러레이터인 ‘제로원(ZER01NE)’이 기억납니다. 모빌리티라는 큰 주제로 묶어서 더 관심이 가고, 한 번 더 찾게 되었습니다. 관련 기술이 눈에 잘 띄게 꾸몄더라고요. 회장님이 오실 수도 있어서 더 잘 꾸몄나 싶기도 했습니다(웃음).
소프트웨어보단 ‘눈에 보이는 테크’가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
Q. 참관객 반응은 어땠나요? |
굉장히 좋았다고 말씀드리긴 어렵겠네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CES라는 행사에서 소프트웨어가 각광받기는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CES 2024에서 가장 주목받은 제품이 무엇이었을까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가 직접 체험해서 화제였던 만드로(장애인보조기기 전문기업)의 로봇 손가락 의수였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란히 선보인 투명 디스플레이도 화제였죠. 이런 ‘눈에 보이는 테크’에 아무래도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완성품도 아닌 프로토타입 수준으로는 각광받기 좀 어려운 환경이지 않나 싶네요.
Q. 현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셨을 듯합니다. 의미 있는 만남도 있으셨나요? |
일단 매일 저녁 기관에서 주최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자리만 해도 중기부 주최 만찬, 서울시장 주최 만찬, K-스타트업 관련 만찬.. 그곳에서 그동안 만나기 쉽지 않았던 현업 공무원분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룹사 회장님처럼 높은 분들이 지나다니다가 저희 서비스에 관심을 가져서 한 번 오시기도 하시죠. 국내외 언론사 카메라와 기자 분들도 많이 찾아 주시고요. 한국에서 그냥 사업할 때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약간 ‘엣지 없는 만남’이랄까요? 다 좋으나 휘발성 높은 만남 같았습니다. 순간 으쌰으쌰 하고 말았다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CES에서 만난 인연을 잘 활용하는 분도 계시겠지만요.
Q. 국제 행사인 만큼, 해외 쪽 바이어나 투자자를 만날 기회도 많으셨나요? |
맞습니다. 영국, 캐나다, 미국 등등 그쪽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관심을 표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신 분도 있었는데요. 저희 ‘EV 인프라’는 한국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고객님들의 데이터를 활용하다 보니 외국에 바로 나가기는 조금 무리가 있고요. 그보단 전기차 충전 사업 솔루션인 ‘EVI 허브’가 좀 더 설득력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희는 프로토타입을 선보인 경우라서 해외 시장에 바로 진출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계약을 성사하거나 하긴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바로 팔 수 있는 디바이스나 소프트웨어, 완성도 높은 솔루션을 들고 나가야 그런 실질적인 딜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ES의 가장 큰 성과는 ‘홍보 효과’
Q. 그렇다면 대표님은 CES에 참가해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하시나요? |
그럼에도 ‘홍보 효과’ 같습니다. CES에 참여하여 새로운 사업의 트랜드를 파악하고자 하시는 국내외 기업, 정부관계분들께서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시거든요. 이를 통해서 회사를 알리고 협업포인트가 있는지 서로 검토할 수 있는 자리가 CES라고 생각합니다.
Q. 투자 유치 과정에도 도움이 됐을까요? |
그렇진 않습니다. 투자 유치는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이번 투자 유치 같은 경우에도 마무리할 때까지 6개월 이상 걸렸습니다.
요즘 투자 트렌드는 미래의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을 좀 더 중요하게 봅니다. CES에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거두었더라도 투자 유치 과정에서 인정받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Q. 딱히 큰 성과를 내기 힘든 CES에 우리나라 기업이나 기관이 왜 이렇게 많이 참여하냐는 비판이 많습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충분히 공감합니다. 가 보니 한국 업체의 장 같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전시회 테마가 굉장히 광범위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예컨대 앞서 말씀드린 현대자동차 제로원 부스처럼 뾰족한 테마 하나에 집중하면 괜찮거든요. 하지만 CES 전체적으로는 너무 다양한 테마를 다룹니다.
게다가 공간을 테마 별로 묶지도 않았어요. 모빌리티는 이쪽 전시장, 헬스케어는 저쪽 전시장, 이렇게 한 공간에 특정 테마만 통으로 넣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관심 있는 분야와 전혀 관심 없는 분야가 섞여 있다 보니,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CES,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Q. 돈 내고 머나 먼 라스베이거스까지 갔으니, 한계가 있더라도 CES라는 공간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할 텐데요. CES 2025뿐만 아니라 앞으로 CES에 참가하려는 기업에게 전할 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우선 어디를 방문해야 하는지 미리 계획을 세워 두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국내외 대기업을 중심으로, 작년 대비 무엇이 변했는지 파악하고, 그 안에 우리의 솔루션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들과 명함 교환하면서 네트워크 쌓고, 시장 트렌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꼭 캐치하는 무대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스 준비 관련해선 일단 글씨를 최대한 배제하셔야 합니다. 소개 글 자세히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좀 차별화하겠다고 영상을 준비하는 기업도 있는데, 막상 가 보면 다 똑같이 그러고 있어요. 오락실처럼 여기저기서 번쩍번쩍하면서 소리 들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명확하게 내 솔루션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적으로 준비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의 경우, 충전기 시뮬레이터를 들고 갔습니다. 호기심이 생겨서 오시는 분에게는 ‘화면에 이렇게 실시간 정보가 뜹니다’ 하는 식으로 보여드렸죠.
Q. 대표님은 CES 혁신상이 의미 있다고 보시나요? |
혁신상을 바라는 대표님들의 마음은 비슷비슷할 겁니다. 자격증에 비유하자면, 정보 처리 기사 같달까요? 있으면 그냥 있는 거지만, 없으면 허전한 그런 존재죠.
그래서 ‘예전에 혁신상을 못 받은 업체’에게는 의미있다고 보지만요. 한 번 받은 대표님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IR 자료로 넣으면 끝이니까요. 보는 입장에서도 마크 보면 ‘아 받았구나’하고 넘어갑니다.
꼭 필요하다면야 에이전시를 이용해서라도 받아야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Q. 통합관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기업에게는 어떤 조언을 하시나요? |
우선 운영하는 기관 측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기관에서 섭외한 통역해 주시는 분들도 사전에 충분히 공부하고 오셔서 잘 임해주시더라고요.
전 아까 말씀드렸던, 부스 차린 뒤에는 보이지 않는 기업이 보여서 좀 안타까웠습니다. 그냥 체리피킹이잖아요. 지원금까지 받아서 갔는데, 막상 제대로 운영하진 않으시는.. 정말 회사를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잘할 수 있는 기업이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CES 2025에서 눈여겨보면 좋을 테마를 추천해 주세요. |
아무래도 업에 있다 보니 모빌리티 같습니다. 충전 쪽에서 어떤 식으로 변화/개선되었는지가 첫 번째고요. 전기차와 관련된 기술도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전기차 안에 들어있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더프론티어 편집팀장. 기획자, 편집자, 기자로 일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