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그동안 ‘벤처 무덤’, ‘스타트업 불모지’ 등으로 불렸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큰 장벽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단적으로 투자 규모는 2014년 877억엔(약 8133억)에서 2022년 9446억엔(약 8조 7668억 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공무원에서 스타트업으로 옮겨간 직원 수가 2022년 기준 전년도 대비 4배 증가할 만큼 스타트업 선호도도 높아졌다.
지난 2022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2027년까지 10조엔(약 92조 8090억 원) 규모의 투자액을 유치하고, 스타트업 10만 개를 창출하며, 자국 유니콘 기업 100개를 육성해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리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스타트업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지난 12월 11일, 12일 이틀에 걸쳐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 ‘컴업(COME UP) 2024’에도 일본 스타트업이 다수 참가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뽐냈다. 컴업은 해외 40여 개국의 스타트업 임직원을 비롯해 창업·벤처 생태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교류의 장으로 올해로 6회째를 맞았다. 스타트업 전시, 컨퍼런스, 키노트 스피치, IR 피칭, 오픈 이노베이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도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방문한 혁신 기업들의 피칭 세션이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 진출을 열망하는 일본 스타트업이 컴업 2024에서 어떤 사업 아이템을 선보였는지 정리했다.
알다그램 (Aldagram)
‘알다그램(Aldagram)’은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 ‘칸나(Kanna)’를 소개했다. 칸나는 사무 및 문서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핵심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진행 관리, 사진 관리, 보고서 작성, 정보 공유 등에서 모두 다른 플랫폼을 사용했을 때에 파일이 중구난방 널려 있어 팀 내 혼란을 야기하거나, 특정 이메일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젝트 내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소프트웨어이다.
크게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먼저 ‘칸나 프로젝트(Kanna project)’는 동시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의 현황을 하나의 중앙화된 플랫폼에서 시각적으로 확인 및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채팅, 작업 계획 및 진행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간트 차트(Gantt Chart), 일정 관리를 돕는 달력 등이 탑재되어 있어 효율적인 프로젝트 관리가 가능하다. ‘칸나 리포트(Kanna report)’는 종이 보고서를 디지털화한 맞춤형 디지털 보고서 도구이다. 소프트웨어 안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즉각적으로 편리하게 공유하여 업무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알다그램은 설명한다.
2024년 8월 기준, 알다그램은 태국, 베트남, 인도, 두바이, 스페인 멕시코 등 70개 이상의 국가로 확장되어 전 세계 5만 명 이상의 기업 사용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일본어 외에도 영어, 태국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버전을 출시해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알갈 바이오(Algal Bio)
도쿄대학의 ‘알갈 바이오(Algal Bio)’는 대체연료와 식품, 화장품 연료 등으로 이용 가능한 조류의 잠재력을 탐구하는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이다. 인구 증가와 웰빙을 지향하는 식단 변화 등으로 동물성 단백질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2050년까지 현재의 두 배에 해당하는 단백질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가축 및 양식업 사료로 사용되는 곡물 공급은 한정되어 있어 미래의 단백질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지구 온난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태양광, 풍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로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알갈 바이오는 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주목했다. 미세조류로 만든 바이오연료는 식물 기반 바이오연료보다 생산 효율이 높고, 탄소중립적 배양이 가능하다.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단백질과 바이오에너지의 대체 자원으로서 조류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30만 종이 넘는 조류가 존재하나, 상용화된 종은 30종에 불과하다.
알갈 바이오는 방대한 조류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성장 속도, 단백질 함량, 지방 함량 등 매개변수를 고려하여 고객 요구에 대응한 최적의 조류를 선택하여 제품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또한 조류를 이용해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려는 기업을 위한 원스톱 솔루션, 혁신적인 조류 성분과 높은 생산성의 배양 방법과 관련한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알갈 바이오는 일본과 한국 간의 지리적 근접성과 문화적 유대를 이유로 자연스럽게 한국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특히 한국의 뷰티 및 기능성 식품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한국의 건강, 뷰티, 지속 가능한 소재 부문에서의 시장 잠재력을 크게 보고 있으며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 특화 솔루션을 개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캔리 (Canly)
‘캔리(Canly)’는 2018년 설립된 매장 경영 지원 플랫폼이다. 매장 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들을 디지털화해 체인점 운영자들의 효율적인 매장 운영을 돕는 서비스다. 7만 5000개 이상의 국내외 매장에서 캔리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시리즈B 단계에서 15억 엔(약 139억 2460만 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하여 성장 중이다.
다만, 이번 컴업 2024에서는 HR 분야의 신규 사업을 중심으로 피칭을 이어갔다. ‘매장 경영을 지원하는 세계적 인프라를 만든다’는 캔리의 비전 달성에 있어서 매장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사 영역의 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여 HR로 진출했다고 밝혔다.
매장 관리자가 너무 바빠서 일정이 꼬이거나, 면접에 나오지 않거나, 매칭이 안되는 경우 등 인력 채용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캔리의 AI 면접 서비스는 지원자와 직접 면접 과정을 진행한다. 매장 관리자는 따로 일정을 조율할 필요가 없다. 매장 관리자는 면접 당 3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면접 지원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면접 압축률이 향상되고, 채용 리드타임이 단축되며, 취업 제안률이 증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캔리는 일본 HR 산업에 역사를 쓰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며 1100만 달러(약 160억 4570만 원)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 20%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또한 구직자의 프로필 데이터를 AI에 축적하고 구직자와 구인 공고를 자동으로 매치하는 소비자 서비스를 출시할 것이며 베트남 내 고객과 함께 PoC를 진행할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파인디(Findy)
‘파인디(Findy)’는 ‘디지털 전환과 혁신’을 비전으로 하여 엔지니어링 조직과 개인이 개발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는 스타트업이다. 2016년에 도쿄에서 설립된 파인디는 이미 일본 주요 테크 기업을 포함해 750개 이상의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3년 간 사용자가 800% 증가했고, 8만 명 이상의 엔지니어로부터 신뢰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시리즈C 펀딩 라운드에서 15억 엔(약 139억 3750만 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파인디는 크게 세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먼저 ‘파인디(Findy)’는 정규직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 기업 간 인력 매칭 플랫폼이다. 지원자는 깃허브(GitHub)를 통해 자동으로 자신의 기술 점수를 매길 수 있고, 프로필을 작성해 추가 강점을 어필할 수 있다. 기업이 기술 점수가 높은 엔지니어에게 제안을 발송하면, 매칭이 이루어진다. 엔지니어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가장 적합한 직무를 찾을 수 있고, 기업은 시각화된 기술 능력을 통해 실력있는 지원자를 발굴할 수 있다.
‘파인디 프리랜스(Findy Freelance)’는 같은 플랫폼의 프리랜서 버전이다. 프리랜서 엔지니어가 자신에게 맞는 프로젝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이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의 91%는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 풀타임 근무를 지양하거나 원격 근무를 원하는 프리랜서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직무를 선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인디 팀(Findy Team)’은 엔지니어링 팀의 성과와 생산성을 측정하고 시각화하는 서비스이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링 조직과 개별 구성원은 생산성 및 개발 과정에서의 문제를 시각화할 수 있다. 널리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성과 측정 메트릭인 ‘DORA’나 ‘SPACE 프레임워크’ 등 객관적인 지표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활용하여 엔지니어링 팀이 성과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파인디는 이미 인도에서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2025년에는 한국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인턴 기자 김성희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스타트업들의 고유한 비전과 차별화된 전략을 기사로써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