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기업, 케이뷰티 르네상스를 이끌다

2010년대 초반, 한국 뷰티 업계는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같은 한국 드라마의 흥행에 힘입어 첫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케이뷰티를 선도한 업체는 중국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이다. 그리고 2020년대 들어, 케이뷰티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 양상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먼저 수출국이 다양해졌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한국 화장품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국가는 중국(39%)이었다. 하지만 2024년 상반기 기준 중국의 비중은 25%으로 감소하였고, 미국과 일본 시장의 규모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디 뷰티 기업의 활약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9월까지의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50억 2000만 달러(약 7조 2182억원) 에 달했다. 전체 화장품 수출액 74억 달러(약 10조 6404억원)의 68%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즉, 지금까진 대기업 제품이 중국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는 모습이었다면, 현재는 한국에서도 크게 유명하지 않은 인디 뷰티 기업 제품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흥행하고 있다. 케이뷰티 재도약의 포문을 연 국내 인디 뷰티 기업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인플루언서 마케팅

대기업보다 자본력이 약한 인디 뷰티 기업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주력했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트렌드를 이끄는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제품을 노출시켜 마케팅 효과를 보는 방식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틱톡이 단순한 SNS를 넘어 트렌드를 이끄는 검색 엔진으로도 기능한다는 점, 인디 뷰티 브랜드는 주로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 유통사에 입점한다는 점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급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 ‘티르티르(TIRTIR)’다. 2024년 3월, 유튜브 36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뷰티 크리에이터 달시(@MissDarcei)는 ‘한국 파운데이션의 가장 어두운 색상(darkest shade of a korean foundation)’이라는 제목의 쇼츠 영상을 올렸다. 티르티르의 쿠션 파운데이션을 직접 사용해본 결과, 자신의 어두운 피부에 맞는 색상이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약 한 달 뒤, 티르티르 측은 기존 9가지에서 20가지 색상으로 확장되어 모든 인종이 사용할 수 있는 파운데이션 세트를 달시에게 선물했다. 달시가 다시 한번 올린 리뷰 영상은 유튜브 5961만, 틱톡 22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6월, 티르티르 파운데이션은 아마존 전체 뷰티 카테고리에서 한국 브랜드 최초로 색조 제품으로 1위에 올랐다. 소비자 의견에 귀 기울이고 바로 피드백하는 모습을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제품 홍보 효과로 이어진 성공적인 인플루언서 마케팅 사례이다.

(출처 = 유튜버 ‘달시’)

‘스킨 1004’ 또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스킨1004는 불필요한 첨가물이나 인공색소 없이 자연의 원료를 사용하여 피부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자유주의 스킨케어 브랜드이다. 2024년 3분기 누적 매출 1876억원을 달성했는데, 그 중 해외 매출 비중이 95%를 차지하는 등 티르티르와 함께 K-뷰티를 알린 대표 인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곽인승 스킨1004 브랜드 총괄은 “화장품은 ‘리뷰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화장품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자발적인 마케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뷰티 산업의 해외 진출에 있어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이다.

스킨1004는 처음부터 대규모의 메가 인플루언서와 협업하기보다는 팔로워가 상대적으로 작은 마이크로, 나노 인플루언서를 활용하여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했다. 뷰티 업계는 일반적으로 100~200명에게 신제품을 시딩(seeding, 인플루언서에게 제품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하지만, 스킨1004는 한번에 3000개의 시딩을 진행하여 그 효과를 크게 보고자 했다. 2023년 아마존 프라임데이 선크림 부문에서 1위가 된 ‘히알루시카 워터핏 선세럼’은 글로벌 뷰티 커뮤니티 ‘피키(picky)’에서 3000개의 시딩을 2~3회 연속 진행한 제품이다. 스킨1004는 2025년 1월, 미국 최대 규모 유통업체 코스트코에 대표 제품인 ‘마다가스카르 센텔라 앰플’을 공급하면서 해외 진출을 더욱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 틱톡)

2. 품목 다양화

한층 다양화된 수출 품목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스킨, 로션 등 기본 제품 중심에서 토너패드, 자외선 차단제, 미스트, 립틴트, 헤어 팩, 홈케어 기기 등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인디 브랜드들의 경쟁력도 커졌다. 특히 피부 타입과 퍼스널 컬러를 고려하는 ‘초개인화’ 트렌드에 따라, 브랜드 인지도보다 다양한 선택지 제공이 더욱 중요해졌다. 소비자 니즈를 반영하여 품목을 다양화하는 것이 인디 브랜드 성장의 핵심 전략이 되었다.

‘조선미녀’는 K-뷰티의 인기를 단순 기초 제품에서 선크림으로 확장시킨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우리나라는 선크림을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단계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으로 인식하지만, 미국은 색조 화장을 중시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늦게 선크림에 대한 트렌드가 시작되었다.

조선미녀는 미국 소비자의 달라진 니즈를 신속히 파악하여 ‘맑은쌀 선크림’을 출시해 큰 인기를 얻었다. 글로벌 통계 플랫폼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미국 Gen-Z세대의 화장품 구매 결정 요인 중 가격과 품질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쌀, 팥, 인삼 등 전통 한방 원료를 활용한 한국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대기업 제품 대비 합리적인 가격이 시너지를 낸 조선미녀 선크림이 이들을 제대로 타겟팅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미녀는 2022년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미국 아마존과 올리브영 글로벌몰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선크림 카테고리 1위에 오르며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출처 = 조선미녀)

비건 뷰티 브랜드 ‘달바’가 새롭게 흥행시킨 아이템은 미스트다. 일반 미스트와 차별화된 제품으로 미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일과 에센스의 이층 구조로 구성되어 미스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졌고, 이탈리아산 ‘화이트 트러플’을 핵심 원료로 사용해 비건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대표 상품 중 하나인 ‘화이트 트러플 미스트’는 ‘승무원 미스트’라는 별명으로 입소문을 타 인기를 얻었다. 화이트 트러플 미스트는 2024년 5월 4주차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4개국에서 미스트 카테고리 1위에 올랐다. 2024년 3분기 누적 매출은 2137억원에 달했으며 2023년 순이익 기준 5000억원 안팎의 기업가치가 예상된다. 대기업에 인수되어 성장을 이어가는 인디 브랜드들의 기존 경향과 달리, 달바는 독자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달바는 2025년 상반기, 코스피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 달바)

3. ODM 기업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인디 뷰티 브랜드의 마지막 공통점은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사개발생산) 기업에 제품 생산을 맡긴다는 점이다. 인디 뷰티 기업은 자체 생산시설을 보유한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형 브랜드와 달리 대부분 ODM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고 마케팅과 판매에 집중한다. 국내 ODM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뷰티 트렌드에 발맞춰 성분과 품질에 대한 높은 기준을 유지하고, 시장 규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비건, 할랄 등 국제 인증을 완료하여 국내 브랜드 해외 진출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을 해내고 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국내 뷰티 ODM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코스맥스는 국내 화장품 ODM 업계 최초 ‘2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2024년 2분기 매출액 5700억원, 영업이익 580억원을 달성했다. 코스맥스가 보유한 고객사로는 조선미녀, 롬앤, 마녀공장 등이 있다. 코스맥스는 매출의 70%가 인디 브랜드에서 나오는 만큼, 인디 브랜드에 대한 경쟁력 확보와 대응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에 2024년 7월 ‘올어라운드’ 서비스를 런칭해 인디 브랜드 사에 대한 최소주문수량(MOQ)를 유연하게 책정함으로써 고객사의 부담을 덜고 신규 고객사 유입이 용이하게 했다. 2025년에는 인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 고객사 확보를 위한 ‘LOCO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출처 = 코스맥스)

한국콜마는 2024년 2분기 매출액 6602억원, 영업이익 717억원을 달성했으며 미국 주간지 타임 선정 ‘2025 세계 최고의 지속가능 성장기업’ 12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콜마는 티르티르, 아누아, 조선미녀 등을 고객사로 보유하며 LG생활건강 등 대기업들도 일부 물량을 한국콜마에 맡기고 있다. 한국콜마는 R&D를 경쟁력으로 보유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콜마는 2021년 1051억원, 2022년 1221억원, 2023년 1273억원의 비용을 R&D에 투입했다. 기술력을 통해 다양한 고객사들을 모으고 그 이익을 다시 R&D에 투자하는 순환 전략으로 인디 브랜드의 글로벌 성공을 뒷받침하고 있다.

(출처 = 한국콜마)

인턴 기자 김성희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스타트업 생태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고유한 비전과 차별화된 전략을 생생하게 기사로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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