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단클론항체 치료제 및 기타 약물 개발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FDA가 제시한 대체 방식은 체외 실험, 컴퓨터 기반 예측 모델 등 기타 비동물 실험 방법(NAMs, New Approach Methodologies)으로, 임상시험계획 신청 단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또한,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해당 약물이 이미 인체에서 연구된 경우, 유사한 규제 기준을 갖춘 다른 국가들의 기존 안전성 데이터를 활용할 계획이다.
마틴 마카리 FDA 국장은 “그동안 제약회사가 국제적으로 광범위한 인체 사용 데이터가 있는 약물에 추가적인 동물 실험을 수행해 왔다”라며 동물 실험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FDA는 이번 정책으로 약물 안전성을 향상하고 평가 절차를 가속화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연구 개발 비용을 절감해 약가를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FDA 장기 목표와 정책적 과제 : 단클론 항체에서 모든 치료제로
FDA는 향후 3~5년간의 장기 목표를 발표해 NAMs를 기본 시험법으로 전환하고 동물 실험은 예외적, 보완적 용도로만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물 대상 독성 시험을 축소하기 위한 3개년 계획을 공유했다.
첫째, 기존 국제 데이터를 활용한다. 이미 특정 화합물이 승인된 국가의 인간 독성 데이터를 FDA IND 심사에 활용하며, 추가 데이터는 불충분할 경우에만 요구할 것이다. 유럽화학물질청(ECHA)의 ‘ECHA chem’, 유럽 제약사가 구축한 ‘Etox’ 등을 참고할 수 있다.
둘째, NAM 데이터 병행 제출을 장려한다. 오가노이드, 컴퓨터 기반 예측 모델 등의 NAMs 데이터를 동물 실험과 함께 IND 및 BLA 자료에 보완적으로 제출하는 것을 권장한다. 신뢰성 입증 시 동물 실험을 축소하거나 일부 사례에서는 NAMs만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예정이다.
셋째, 국제 동물 및 인간 독성 종합 데이터 저장소를 구축한다. ‘Tox21’ 등 기존 공공 데이터와 민간/국제 데이터를 통합하여 독성 예측 모델링에 활용한다. 이를 위해 미 국립 독성학 프로그램(NTP)과 협력할 것이라 밝혔다.
넷째, 단클론항체 대상 영장류 시험을 단축한다. 1개월간의 독성 시험과 NAMs 시험에서 우려 신호가 발견되지 않으면 기존 6개월 독성 시험을 3개월로 축소한다. 가중치 기반 평가 도입으로 장기 시험 생략 가능성을 확대한다.
다섯째, 기타 약물 대상 동물 독성 시험 기간을 단축한다. 기존 임상 정보 및 낮은 독성 위험 예측을 기반으로 시험 기간을 축소하며, AI 보조 모델을 활용한 3개월, 6개월 동물 실험과 그렇지 않은 동물 실험 모델 간 효율성 비교 실험도 계획한다.
여섯째, 독성 시험의 변화를 추적한다. 6개월마다 종별 동물 실험 시간과 비용, IND 당 독성 시험 비용, NAMs와 동물 실험을 통한 안전성 신호 식별 비용, 시간 경과에 따른 비용 변화, 신규 독성 발생률, IND에서 승인까지 소요 시간을 정기적으로 추적한다.
정책 과제도 발표했다. 새로운 지침을 발행하거나 기존 지침(ICH S6(R1) 등)을 개정하여 대체 시험법의 명시적 허용을 추진할 예정이며, 그전까지 개별 사례별 면제 또는 예외 조항을 활용할 계획이다. NAMs를 활용하는 기업에 신속 회의 요청 수락, 규제 검토 우선순위 부여 등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FDA 신약 승인과 동물 실험 활용의 역사
미국 연방 식품, 의약품 및 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s Act)은 1938년에 제정됐다. 1937년 동물 임상 실험을 거치지 않은 ‘설파닐아미드 항생제’가 100여 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대두된 의약품 안전성 문제가 촉매제가 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신약을 판매, 유통하려면, 동물 실험으로 안전성을 입증해야 했다.
FDA 승인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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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등장한 FDA 현대화법 (FDA Modernization Act 2.0)은 대체 시험 방법을 허용했으나, 동물 실험 결과는 여전히 전임상 시험에서 관례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전임상 시험을 통과한 약물의 약 90%는 인체에서의 독성과 효능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해 임상 시험에서 실패한다.
현행 약물 개발 절차가 큰 비용과 시간이 든다는 문제점 역시 지속적으로 지적됐다. 신약이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평균 10~15년이 필요하다. 개발 비용도 계속 증가해 왔다. 2003년 기준 평균 신약 개발 비용은 약 8억 200만 달러(약 1조 1000억원)였으나, 2024년에는 22억 3000만 달러(약 3조 600억원)에 달해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한국 제약바이오업계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
이런 상황에서 FDA는 동물 실험의 의존도를 줄이고 대체 시험법을 도입하여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동물실험의 대안으로 지목한 방법은 오가노이드, 장기칩, 인공지능 기반 예측 모델이다. 그러자 해당 기술 개발 및 상용화에 주력하던 기업들이 일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1. 오가노이드
줄기세포로부터 3차원으로 배양한 장기유사체로,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부분적으로 재현한다. 신약 후보물질의 유효성 및 독성 평가, 질병 메커니즘 연구, 개인 맞춤형 치료법 개발 등에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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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가노이드 사이언스 (Organoid Sciences)
2018년 설립한 ‘오가노이드 사이언스’는 신약 개발 단계에서 사용되는 오가노이드 모델 기반 약물 효능 및 독성 평가 솔루션 ‘오디세이’, 장, 침샘, 자궁, 간 등 다양한 장기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재생치료제 ‘아톰’이 주요 제품이다. 지난 2020년 오디세이 국내 상용화 이후 국내외 정부 기관, 병원, 제약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주 성과를 보이고 있다. - 라다하임 (RadaHaim)
2022년 설립한 ‘라다하임’은 자체 개발한 자동화 및 표준화 배양 기술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 과정에서 간 독성 평가를 위한 오가노이드 모델을 개발했다. 국내외 연구 기관, 제약사와 업무 협약을 맺어 오가노이드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제품 상용화를 계획 중이다. - 바이오솔빅스 (BioSolvix)
2023년 설립한 ‘바이오솔빅스’는 줄기세포 기반의 오가노이드 기술 ‘아바토이드’를 활용해 동물 대체 시험 플랫폼과 세포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로부터 분화된 심근세포를 고효율로 분리, 정제하는 기술에 대해 국내 특허를 취득해 심혈관 질환 연구와 신약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오가노이드 (출처=Max Delbrück Center)
2. 장기칩
유체공학 기술을 활용해 인체 장기의 구조와 생리적 환경을 모사한 마이크로칩 기반의 바이오 모델이다. 약물 반응, 독성 시험, 질병 연구 등에서 미세환경을 구현하며 오가노이드의 한계를 보완한다.
- 큐리에이터 (Qureator)
2016년 설립한 ‘큐리에이터’는 생체 모사 장기칩 기반 플랫폼을 개발했다. 주요 장기의 미세환경을 정밀 재현해 신약 후보 물질의 독성 및 약효 평가에 활용한다. 미국 신약 개발사 버텍스 출신 전문 인력이 다수 포진해 있다. 겸형 적혈구 빈혈증 등 동물 모델이 없는 질환에 대해 장기모사칩을 개발하고 있다. - 에드믹바이오 (EDmicBio)
2019년 설립한 ‘에드믹바이오’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접목한 장기칩을 개발했다. 간, 폐 조직 특이적 ECM을 기반으로 한 ‘ENK-Liver’, ‘ENK-Lung’과 환자 맞춤형 약물 반응 테스트 칩을 개발, 상용화했다. 5년 연속 대한민국 산업대상 바이오프린팅 기반 장기칩 부문 ‘K-퍼스트인클래스’를 수상했다. - 멥스젠 (MEPSGEN)
2019년 설립한 ‘멥스젠’은 세계 최초로 3차원 조립구조의 플라스틱 칩을 대량 생산했다. 이후 뇌혈관 장벽을 3차원으로 모사한 인간 장기 모델 칩 등 다수 모델과 조직칩 자동화 배양 장비 ‘프로멥스’를 시장에 출시했다. 국내외 주요 병원 및 CRO, 연구소와 협업하며 국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멥스젠의 인간 조직 장기 칩(3D Human Tissue Barrier Chip) (출처=멥스젠)
3. 인공지능 기반 예측 모델
딥러닝과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신약 개발 전 과정을 가상 환경에서 설계하고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질병 관련 유전자 분석을 통한 치료 표적 도출, 후보물질의 화학 구조 생성, 독성 및 약효 평가, 임상 성공률 예측까지 수행할 수 있다.
- 아론티어 (Arontier)
2017년 설립한 ‘아론티어’는 단백질 구조 기반 AI 모델 ‘AD3’ 신약 개발 플랫폼을 개발했다. 신 항원의 면역원성을 예측하고, 서열 기반의 알고리즘, 신 항원과 MHC(pMHC), TCR과의 단백질 결합 구조를 활용해 이를 향상하는 기술을 가진다. 2025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선정됐으며, 현재 셀트리온제약과 협업해 신약 개발 중이다. - 히츠 (HITS)
2020년 설립한 ‘히츠’는 생성형 AI 기반의 신약 개발 플랫폼 ‘하이퍼랩(HyperLab)’으로 약물 효능, 독성 등을 예측한다. 단백질 이름만으로 리간드-단백질 간 결합 구조와 에너지를 예측할 수 있는 솔루션도 보유, 11조 개 규모의 초대형 가상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유효물질 발굴 확률을 높였다.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 아래 카이스트, 삼성서울병원 등과 함께 AI 신약 발굴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 에임블 (Aimble)
2020년 설립한 ‘에임블’은 구조 기반 신약 후보물질 발굴 플랫폼을 개발했다. 양자계산, 분자동역학 기술 등 물리학 기술에 AI 딥러닝 알고리즘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백신 개발 기업 백스다임과 협업해 AI 활용 백신 라이브러리를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독일 분자생명과학연구소, 유니스트 연구진과 함께 합성 치사 항암 기술을 개발한다.에임블의 AI기반 타겟 단백질 발굴 솔루션 (출처=에임블)
EU, 동물 실험 대체 선두… 한중일은 아직 전환의 길목
미국을 제외한 제약바이오 분야 주요 시장을 꼽히는 한국, EU, 중국, 일본 모두 신약 IND 및 최종 허가를 위해 독성과 약리를 입증하는 절차에 NAMs를 활용해도 된다고 인정했다. 다만, 수용 정도와 관련 규제는 모두 다르다.
EU는 가장 적극적으로 동물 대체 실험을 수용했다. 2022년 EU(영국, 북아일랜드, 노르웨이 포함)에서 사용한 실험용 동물은 1069만 8496마리로, 2018년(1209만 3096마리)보다 11.53% 감소했다. 2018년 이후 동물 사용을 지속적으로 줄인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국은 2018년 372만 7163마리에서 2022년 499만 5680마리로 오히려 34.03% 증가했다. 검역본부는 중개 및 응용연구를 수행하는 일반기업체의 증가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부는 2026년까지 동물 대체 시험 전용 시설을 건립하고, 2030년까지 유해성 시험 자료의 60% 이상을 대체 시험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계획을 순조롭게 이행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대체시험법 관련 법안은 지난 21회 국회에서부터 계류되었고, 2025년 NAMs 개발과 관련한 정부 예산은 식약처 전체 예산의 1.3%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장기칩, 오가노이드 같은 첨단기술을 일부 연구나 임상 사례에 예외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실험 기반 비임상 자료는 신약 심사 과정에서 여전히 필수적이다.
동물실험 정책 및 NAMs 수용 동향 비교 (출처=더프론티어) - 오가노이드 사이언스 (Organoid Sciences)
더프론티어 인턴 기자 이유진입니다. 사회 혁신을 이끄는 기업에 관한 글을 씁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을 깊이 있는 기사로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