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벤처투자 대표 배준학 인터뷰] K바이오, 성장의 끝에서 갈림길에 서다

한국 바이오 산업은 지난 10년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해왔다. 2013년, 정부와 국회, 복지부, 산업은행이 바이오를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선정하며 1천억 원 규모의 글로벌 제약 펀드를 조성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바이오는 ‘희귀 아이템’에 불과했지만, 정부의 결단과 자금 투입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기술특례 상장 제도 덕분에 바이오 기업은 수익이 없어도 상장이 가능했다. 당시 60개 기업이 상장하면, 15개가 바이오 기업일 정도로 상장 붐이 일었다.

이런 분위기는 2022년을 기점으로 급변했다. 정부 지원이 줄고, R&D 예산은 삭감되면서 젊은 연구자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갔다. 상장 문턱도 높아지며 바이오 산업은 점차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시기, 중국은 국가 차원의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글로벌 바이오 시장 선두로 부상했다. 2024년 기준, 글로벌 신약 개발의 1/4이 중국에서 이뤄질 정도다.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 오랜 투자 경험을 쌓아온 오라클 벤처투자 배준학 대표는 “지난 3년간 한국 바이오 시장 투자가 위축되는 사이 중국은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했다”고 진단했다. 배 대표는 국내 바이오 산업의 성장과 위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인물로, 다수의 바이오 스타트업과 혁신 기업에 투자하며 업계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투자 한파, 그리고 산업의 다양성 위축

최근 한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이다. 투자 유치에 성공한 바이오 기업은 전체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자금난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투자 한파는 산업의 다양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나 유럽의 유니콘 기업들은 핀테크, 하이테크 등 다양한 분야에 분포하지만, 한국 유니콘은 이커머스에 집중돼 있다. 바이오 분야의 혁신과 도전이 점차 위축되는 구조다.
배 대표는 “돈이 말라버리면 기업도, 기술도 성장할 수 없다”며 “미국은 대형 투자가들이 시장을 다시 살리고 있지만, 한국은 대형 바이오 투자자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쟁력, 그리고 다시 시작할 조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갖춰야 할 역량에 대해 배 대표는 “차별화된 기술과 아이템, 그리고 협업과 M&A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미국과 유럽의 제약사들은 수십, 수백 번의 M&A를 통해 성장해왔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힘을 합쳐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시험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한국에서만 임상시험을 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어렵고, 다양한 인종이 참여하는 호주나 미국에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해야 진정한 글로벌 진출이 가능하다. 자본력의 한계로 인해 한국 바이오텍은 초기 개발까지만 하고, 이후에는 라이선스 아웃을 통해 기술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해외 진출 역시 쉽지 않다. 시장 정보와 네트워크를 쌓는 데만 최소 3년은 걸린다. 정부의 다양한 해외 진출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여러 번 도전해야 하며, 한 번에 투자 유치까지 기대하기보다는 시장을 파악하고 파트너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배 대표는 투자자 역시 단순히 돈을 대는 역할을 넘어, 좋은 사람과 팀을 알아보고 성장할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업의 성장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며 “기술이나 자본도 중요하지만, 기업가정신과 혁신, 열정, 도전정신을 가진 인재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의 시각으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이야기를 생생하게, 법률 정보는 유익하고 쉽게 전달하겠습니다.
"As a student at Yonsei University studying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I offer a fresh, relatable perspective on Silicon Valley startups. My goal is to make legal information beneficial and easy to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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