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에 필요한 ‘외국환 신고’
대한민국의 외국환거래법은 ‘거주자’와 ‘비거주자’ 사이에 증권을 취득하는 거래를 원칙적으로 사전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플립과 관련하여서는 ① 한국법인의 주주가 미국법인 주식을 취득하는 것에 대한 신고, ② 미국법인이 한국법인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에 대한 신고가 각 필요하다.
한편 외국환거래법은 외국환은행과 같은 외국환업무취급기관 등을 통하지 않고 지급이나 수령을 할 경우 원칙적으로 사전에 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플립을 하게 될 경우 증권 취득에 따라 외국환은행을 통해 취득 대금을 지급하거나 수령하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외국환은행을 통하지 않은 지급/수령에 대한 신고가 필요하다.
위 외국환 신고 절차는 신고의 주체가 거주자인지 비거주자인지, 외국법인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플립 시 실제로 현금이 오가는지 아니면 주식교환만 이루어는 지에 따라 신고를 해야 하는 은행(외국환은행 또는 한국은행), 작성해야 하는 신고서의 종류와 방법 등이 달라지는데, 그 방법이 외국환거래법과 외국인투자촉진법 및 각 시행령, 시행규칙에 복잡하게 나뉘어 규정되어 있어서 외국환신고를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외국환신고의 핵심적인 기준이 되는 ‘외국환거래규정’은 기획재정부 고시로 정해져 있는데, 고시는 하위법령에 불과하고, 자주 변경될 뿐 아니라 그 구조가 법령만큼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고 관행에 의해 좌우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외국환 업무를 담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외국환 신고에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외국환은행의 각 지점에서 이러한 외국환신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특히 플립이 현장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거래라는 점에서 각 지점이 외국환신고에 대해 숙지하고 본점과 소통하는데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외국환신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외국환은행의 특정 지점에 찾아가는 것인데, 그러한 특정 지점을 찾는 것도 어렵거니와 이미 주거래은행이나 지점이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새롭게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스타트업에게는 일분 일초가 중요하고, 투자를 유치하거나 플립을 하는 과정 역시 신속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에도, 플립이 단지 외국환 신고 때문에 절차가 지연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한편 이러한 절차를 간과하고 플립을 진행하는 경우도 흔한데, 위규 시에 과태료나 벌금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자본거래 시 사전신고 의무
주주의 주식 처분은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왜 외국환신고와 같은 절차를 꼭 거쳐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는 ‘자본거래 사전신고제’라는 제도 때문이다.
우리 외국환거래법은 증권의 취득 등을 ‘자본거래’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고(외국환거래법 제3조 제1항 제19호), 자본거래를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 및 하위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원칙적으로 ‘사전에’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외국환거래법 제18조 제1항). 이를 이른바 ‘외국환거래 사전신고제’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허가제’ 중심의 외국환관리법을 개정하여, 원칙적으로 외환거래를 자유롭게 허용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규제하는 ‘신고제’ 중심의 외국환거래법을 도입한 바 있다. 이후 외국환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이 개정되었고, 이와 더불어 고시(외국환거래규정)까지 자주 개정되면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관련 규정이 매우 복잡해져 버렸다.
수범자 입장에서 ‘허가’와 ‘신고’의 차이는 그 엄격함과 번거로움의 정도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1999년 신고제로의 전환은 자유가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재화와 서비스가 오고 가는 수출입 등의 거래의 경우에는 사전신고가 필요 없으나, ‘자본’이 오고 가는 자본거래는 ‘대외불확실성 억제’, ‘외화유출 억제’를 이유로 ‘사전신고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약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외국환거래는 실제 지급이나 수령이 이루어져야 거래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인데, 신고제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나 외국환은행과 같은 신고기관에서 해당 신고가 원활하게 처리되어야 외화의 송금 등이 가능하다는 점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정부의 외환제도 개선 노력
이같이 복잡한 외환제도에 대한 시장의 불만은 계속되어 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기획재정부 ‘외환제도과’에 들어온 질의는 490건으로 세제실 재산세제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외국환거래법을 전면 제·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신외환법을 마련하겠다고 한 바 있고, 그 변화의 방향을 △‘예외의 예외’ 대폭 삭제를 통한 규제 단순화 △외국환 업무의 업권별 규제 완화 △누더기 법령의 정상화 △향후 가상자산의 지급 수단 인정 등 미래 수요를 감안한 법령 유연성 확보 등 네 가지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는 특히 이와 관련하여 2022년 7월경 신외환법 세미나를 개최하여 학계의 의견을 듣는 한편, 2022년 11월에는 국민제안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새로운 외환제도에 대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최근 글로벌 금융 상황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대외 여건 변화에 따라 환율 변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 등은 외국환거래에 대한 규제 완화의 수위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낳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외국환거래법, 그 방향에 대하여
외국환거래에 대한 규제 재정립의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외국환거래신고와 관련한 실무를 담당해 온 변호사의 입장에서 새로운 외환법의 개선방향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사전규제’에서 ‘정보관리를 통한 사후규제’로 규제 방향이 변경되어야 한다. 즉,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예 송금 자체가 불가능하게 틀어막는 방식 대신, 자금의 흐름을 정확히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외국환 거래제도의 존재 목적(대외불확실성 억제)에 비추어 볼 때 모든 규제를 사후규제로 변경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사전규제 완화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현재 5만불로 한정되어 있는 자유로운 송금 금액은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기업 등의 투자 활동 규모를 고려할 때 턱없이 적은 금액이므로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외환신고 관련 소통 창구의 일원화 및 전자화이다. 외환신고를 담당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각 기업의 주거래은행 지점에서 외국환 업무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해당 지점이 외국환신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또 본사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외국환 신고와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한국은행 또는 기획재정부 내에 전담 부서나 포털 등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에 더 나아가 (등기절차를 전자화한 것과 같이) 외국환 신고 또한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도록 전자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전자신고의 경우, 서류 심사 절차가 생략되거나 사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전자신고로 전환이 가능한 신고의 선별 작업 또는 앞서 언급한 사후규제로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외국에서도 전자정부를 통해 신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현재는 실제 신고인인 거주자가 국내에 체류하지 않는 경우 외국환신고를 위해 귀국하거나 국내 대리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외국환신고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에 비하여 신고를 위해 번거로운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다소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나 기업의 경제활동 범위가 크게 글로벌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세 번째, 가상자산 등 새로운 자산과 관련한 각종 거래에 대해 외국환의 측면에서 대안 마련 및 규제 검토가 필요하다. 외국환신고와 관련한 신고기관 또는 정부 관계자들은 가상자산에 대한 얘기가 조금만 나와도 이를 취급하기 매우 꺼려하는 분위기다.
예컨대 외국에서 가상자산과 NFT를 제작하는 회사에 현금으로 지분투자를 한다고 할 때, 신고를 받는 것조차 거부할 정도로 매우 소극적이다. 가상자산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는 가상자산을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른 법령과의 정합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렵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상자산은 본질적으로 기존의 법정화폐와 달리 손쉽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외국환거래 측면에서의 규제 방식에 대한 검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현재 가상자산의 규제 방식에 대한 글로벌 논의는 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가상자산을 외환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함께 글로벌 정합성을 지닌 규제를 설계할 필요성이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