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 게임에 도전하는 혁신가, 코드박스 서광열 대표

창업가들은 대체로 원대한 꿈과 함께 창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꿈이 주는 에너지는 현실의 저항값에 따라 점차 사라져간다. 하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현실의 문제를 마치 징검다리처럼 디디며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우리는 이들을 ‘위대한 창업가’라고 부른다. ‘ZUZU(주주, 이하 국문명 생략)’ 서비스를 운영하는 코드박스의 서광열 대표도 그 중 하나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주목받는 개발자로서 활약했던 서광열 대표는 2017년 코드박스를 창업하였고, 2020년에는 스타트업 주주 관리 서비스 ZUZU를 출시했다. 그리고 2021년 두나무에 코드박스 지분을 매각하여 코드박스는 두나무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그는 창업 후 4년 만에 소위 ‘EXIT’까지 하였고, 이제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계열사 대표가 되었지만, 그의 꿈과 열정은 여전히 창업 1년 차 대표들에 뒤지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디까지 나아가고자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서광열 대표님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단연 ‘ZUZU’ 이야기겠지만, 오늘은 이를 만들어가는 ‘그’에 대한 질문으로 먼저 시작하고자 한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그의 정체성은 ‘개발자’였다.

개발자로서 첫 사회생활 시작, 개발의 본질은 ‘문제해결 능력’

서광열 대표님은 개발자로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언제부터 개발을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컴퓨터 학원에 갔어요. 처음엔 게임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코딩을 배웠고, 그 후로도 코딩을 계속했어요.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죠.

롤모델인 특정 프로그래머가 있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코딩이 재밌었고, 당연히 프로그래머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22살부터 병역특례로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꿈을 빨리 이뤘죠.

좋아하던 코딩을 일로 하게 되니 어떠셨나요?

일로 해도 재밌었고, 개발을 통해 많이 성장했어요. 개발은 일종의 스킬이긴 하지만, 좋은 개발은 궁극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푸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거기엔 코딩 스킬뿐 아니라 프로젝트나 피플 등 여러 매니지먼트 능력이 필요해요. 개발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역량이 쌓일 수 있고, 그게 현재 회사의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한 ‘개발’이라는 특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 능력’ 이라는 보편적 능력의 영역까지 나아갔다. 서광열 대표를 마주할 때 느끼는 감탄은 대부분 이런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깊고, 그 뿌리 또한 넓어 보통은 그 분야를 넘어서는 본질까지 닿는다. 그런 그인 만큼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궁금해진다.

그에게도 창업자가 아닌 ‘직원’이었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창업자가 된 것일까.

‘문제해결’이란 본질 앞에서 개발과 사업은 같다.

대표님도 신입 시절을 겪으셨겠죠. 혹시 첫 직장 기억나세요? 신입으로 일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셨는지

제가 병역특례(이하 ‘병특’)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병특은 사실 특수성이 있어요. 직장인이라는 마인드가 약하죠. 군대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고, 아직 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거든요. 반 직장인, 반 학생, 반 군인 정도였죠. (웃음) 그 이후 실제 직장 생활을 한 것은 대학 졸업 후인데,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 창업팀의 세 번째 멤버 이후 자리는 들어가질 않았죠. 세 직장을 다녔는데, 처음엔 세 번째, 다음엔 두 번째, 코드박스는 제가 첫번째 멤버였어요. 모두 초기부터 만들어가는 경험만 했던 거죠.

몇 살에 창업을 하신 거예요?

코드박스를 2017년에 창업했으니, 38살 때죠.

새로운 창업을 하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제가 대기업 과장이었으면 두려웠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어차피 아무것도 없었는 걸요. (웃음)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밥 먹다가 나온 사람이 아니라서… 별로 두렵지 않았어요. 동냥이 겁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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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길을 걸어오시다가 경영도 하고 계시는데, 대표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둘은 같지만, 분명 다른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CTO도 해보고 CEO도 해본 대표님이 보시기에  CTO의 역량과 CEO의 역량이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나요?

(CTO와 CEO가) 유사하다고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처음 창업했을 때는 개발만 잘하면 잘되겠지?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죠. 보통은 대표가 2~30억 원은 써봐야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다행인 게 그 정도 까먹고도 망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결국 상당한 고생(?) 끝에 개발과 사업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인데, 개발과 사업이 어떤 부분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나요?

제가 지금 경영할 때 도움 되는 것 중 기술적인 면은 개발자, CTO 시절에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월등한 면도 있어요. 왜냐면 소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게 제품 하나 만들려면 투두(To Do)가 있거든요. 흔히 이슈라고 하는데, 지금 ZUZU 서비스도 버그나 할 일을 써 놓은 게 대략 2,000개씩 쌓여 있어요. 그럼 그 중에서 무엇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해서 이번 목표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정하는 게 PM이에요.

개발자는 이런 것들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사업하면서 몰려드는 수많은 이슈의 우선순위를 판단해서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한 짧은 시간에 어떻게 성과를 낼 건가를 고민하는 대표가 되고 보니, 개발자일 때 이런 것들이 이미 연습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개발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라는 거죠?

그렇죠.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게 핵심은 문제 해결이고, 그 해결을 소프트웨어가 한다는 차이밖에 없거든요. 개발은 소프트웨어가 하는 거고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면 그게 경영이 되는 거죠. 저는 소프트웨어를 포기하는 게 제일 어려웠던 거 같아요. 나는 모든 문제를 소프트웨어로만 풀었는데, 소프트웨어가 아닌 걸로도 풀 수 있다는 걸 깨닫는데 한 3년은 썼죠.

2~30억도 쓰고요?

네, 2~30억을 지불하고요. (웃음)

“너는 돈이 없어봐서 돈 많은 사람의 생각을 모르는 것 같다.”

스타트업 사업가로서 자본시장 이해의 필요성을 깨닫다.

오랜 기간 고착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도 꽤 빠른 시간에 전환하셨다고 생각하는데요.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풀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은 사건이 있었나요?

코딩 말고 피플 매니지먼트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아요. 그 중 5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창업하고 초기에 VC 심사역을 만났을 때예요. VC 상무님이 기술 내용밖에 없는 IR 자료를 보고, 저한테 하신 말씀이 “너는 돈이 없어봐서 돈 많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거 같다.” 였어요.

제가 있던 분야가 블록체인도 그렇고, 지금 하고 있는 ZUZU라는 서비스도 결국 자본 시장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자본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돈 많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와 관련한 문제를 푸는 거죠. 그래서 자본 시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한마디가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만들었죠.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스타트업이라는 게 자본 시장의 첨병이거든요. 단순히 기술 만들어서 원가 100원 넣고 200원 벌겠다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원가를 1,000원 넣고 100원밖에 못 벌지만 투자를 받아와서 다음 단계로 가고, 또 다음 단계로 가고, 더 큰 문제를 풀고, 그래서 언젠가는 돈을 벌겠다는 사업인 거죠. 그런데 이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돈 못 버는 비즈니스를 하다니 그럴 줄 알았어.”, 이런 쉬운 결론에 도달한단 말이에요. 그런 (단편적인) 생각 말고, 여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곳인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자본가로서의 마인드는 무엇이고, 자영업자의 마인드는 무엇이고, 월급쟁이의 마인드는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죠.

사업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내면의 사고를 꺼내어 세상과 맞닿으며 나와 세상을 이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는 개발자에서 창업자로 나아갔고, 창업자가 된 뒤에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자본시장의 본질에 닿게 되었다. 마치 하나의 퀘스트를 해결하면 더 큰 퀘스트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는 도전에 성공한 사람이면서도 늘 도전하고 있는, 이제 막 시작하는 창업가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끌어 가는 것일까?

‘EXIT’은 창업의 끝이 아닌, 더 나아가기 위한 선택

코드박스는 이제 여정의 초입에 들어선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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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제 막 창업하신 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가 잘 해왔다는 이야기보다는 앞으로 이렇게 해 보겠다는 열의가 돋보이시네요.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영감과 에너지도 넘쳐나세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이미 성공해서 EXIT(엑싯, 이하 영문명 생략)한 창업가로 보지 않나요?

결과론적으로는 코드박스를 두나무에 매각함으로써 코드박스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됐고, 저는 M&A를 통해 엑싯을 하게 되었죠.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 보면 여전히 코드박스가 초기 회사 단계라고 생각하거든요. ZUZU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출시한 지 2년 됐고 아직 BEP(손익분기점)를 달성한 것도 아니에요. 또 저희 비즈니스가 수평적으로 규모를 키워가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의 백오피스 업무라는 1차적인 BM을 완성하고, 이후 금융과 관련된 서비스로 넘어가고, 수직적으로 계속 올라가야 되기 때문에 새로운 BM으로 테스트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돼요.

그래서 지금 “내가 어느 정도 성공했어.”라고 말하기에는, 엑싯에 성공한 것 외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는 회사인 거예요. 여전히 제가 처음에 그렸던 다양한 그림들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그래서 엑싯을 안 한 사람처럼 회사에 계속 남아서 같이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아직 여정의 초입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하고 싶은 게 (손짓하시며) 이만큼인데 저는 이제 막 출발선을 지나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운이 좋게 엑싯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지금은 “빨리 (다음 단계로) 가봐야지.” 하는 상태에 가까워요. 사실 M&A 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업적인 면이든 뭐든 조금 이른 상태였거든요.

그럼에도 엑싯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 사업의 본질이 자본 시장의 인프라를 만드는 비즈니스예요. 따라서 도로와 항만처럼 자본의 투하가 굉장히 많이 필요한 비즈니스일 거라 생각했어요. 내가 이 비즈니스 성과를 조금씩 만들어서는 어느 세월에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만들 수는 있을까? 이런 고민을 엄청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M&A를 하는 게 원래 생각했던 길을 빨리 가는 방법이겠다고도 생각했죠.

개인적으로 엑싯하는 것도 좋긴 하죠. (웃음) 아니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ZUZU라는 비즈니스도 결국은 지금 두나무가 하고 있는 ‘증권 플러스 비상장’이나 자본 시장과 관련된 인프라를 붙여 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혁신 금융을 하는 두나무 같은 회사와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는 일관되게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사업을 하는 것도, 엑싯을 하는 것도 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일뿐이다. 본인의 말처럼 그는 사업을 통해 더 큰 문제, 다음 단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엑싯을 했다. 그러기에 그에게 있어서 엑싯은 끝이 아닌 과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거대 기업집단의 계열사 대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이루어가고자 하는 꿈의 밝기와 열정의 온도가 남다르다.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도전하는 창업가다.

하지만 그런 그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지 않을까?

창업 후에도 기술자로서 ‘기술’에만 몰두하던 때에 어려움 겪어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비전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

이렇게 코드박스가 계속 성장해 오면서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ZUZU 서비스하기 전이죠. 제가 코드체인이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거의 2년 반 동안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제품으로 만들어서 상용화하는 게 계속 늦어지고, 회사에 돈은 떨어지고, 이 시기에 뭔가 이걸 계속해야 되나, 새로운 걸 해야 되나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 단계가 있었어요.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멤버들도 많이 바뀌었죠. 처음엔 기술 기업으로 재미있는 기술을 만들어 보자 하던 친구들이 있던 회사였고, 지금은 서비스를 만드는 친구들이 있는 회사니까요. 이 타이밍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바로 제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거든요. 기술자의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던 시기.

기술자와 경영자의 기로에 서 계실 때군요.

그렇죠. 기술자로서는 잘 만들었는데, 왜 시장은 몰라주지? 별로인 것처럼 보이는 다른 블록체인은 잘 되는 거 같은데, 왜 우리를 몰라주지? 이런 고민을 하던 시기고요. 그래서 제가 초창기에는 비난을 많이 했습니다. (웃음) 하지만 이제는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그 회사의 사정을 제가 100% 모르는데 쉽게 이야기한 것도 있었고, 당시에 사업을 5년 이상 해왔던 선배 창업가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다 기사회생하기도 한 건데, 그 앞의 세월을 너무 쉽게 보고 말한 것도 있는 거 같고,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라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그런 힘든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있다면요?

제가 최근에 많이 느끼는 건데요. 생계형 비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웃음) 어차피 어려운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내가 이것만 이겨내고 돈 많이 벌어서 은퇴해야지.’란 마음가짐으로는 끝까지 못가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 회사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자신만의 비전이 있어야 되고, 그 비전을 생각해 내야지만 계속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통해 이루고 싶은 비전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는 그의 말이 인상 깊다. 좋다. 그렇다면 그가 코드박스, ZUZU 서비스를 통해 이루고 싶은 비전은 무엇일까.

ZUZU를 통해 개인의 자본, 자산에 대한 접근성이 확대되길

더 높은 고객 효용을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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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의 비전, 코드박스가 ZUZU를 통해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ZUZU라는 서비스를 통해 어떤 자본이나 자산에 대한 접근 기회를 넓혀주는 거예요. 개인이 더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 건데, 그렇다고 단순히 접근만 넓히는 게 끝은 아니에요. 접근은 이미 블록체인이 했지만, 그로 인해 (세상이) 더 좋아진 거 같진 않거든요. 돈을 잃을 염려도 커지는 거죠. 또 예를 들어 ‘비상장주식에 아무나 투자하면 더 세상이 좋아지나?’,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오히려 저는 캐피탈을 코딩하는 법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자들은 꼬마 빌딩을 살 때 개인 명의로 사지 않고, 법인 명의로 사서 대출을 많이 일으켜요. 금리가 상승하면 망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법인이기 때문에 연대책임에도 제한이 있거든요. 이런 법적 코딩들을 저희가 제공하는 자산 시장에 제공해 주는 거예요. VC가 돈을 넣을 때도 법적 테크닉을 통해 본인 재산을 더 많이 보호하거든요. 더 많이 보호하게 해주는 건 결국 법률가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인데요. 이런 리걸 코딩을 대중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 ZUZU라는 플랫폼이 주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ZUZU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ZUZU라는 서비스를 만들 때 가장 큰 창의성을 요하는 부분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저희는 스타트업과 VC, 투자자와 투자받는 회사가 모두 이용하는 서비스잖아요. 그 사이에서 투자 계약서나 스톡옵션 계약서의 조항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이익을 얻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도 해요.

저희는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는 플랫폼이 아니에요. 양측 모두에게 적절한 선에서 잘 만들어져서 생태계 전체가 활성화되어야, 즉 양쪽이 다 좋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스톡옵션 계약서에 최대 주주나 대표이사 동의 및 우선매수권 등 조항이 존재하는 게 맞나? 조항들이 어떤 수준으로 들어가야 적절한가? 라는 고민을 양쪽 관점에서 해요. 대표이사 입장에서 보호장치를 만드려다가 반대로 직원에게는 제약이 생겨서 사실상 금전 가치가 없어지게 되면 스톡옵션 제도의 의미가 사라지니까요. 내가 이득을 조금 취하려다가 결과적으론 더 많이 잃게 되는 거죠. 이 밸런스를 저희 서비스 내에서 맞춰 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개발이라는 영역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나요.

맞아요. 소프트웨어가 작동을 해야지 문제 해결책이 나올 수 있거든요. 이런 제로섬 게임을 하는 트레이드 오프에서 소프트웨어가 이걸 깨고 양쪽 다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게 ZUZU가 이 플랫폼에서 하는 역할이죠.

저희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프로페셔널 서비스란 말이에요. 정해진 물건이면 제일 싸게 파는 쪽이 살아남는 건 당연하지만, 프로페셔널 서비스는 가격을 낮춰버리면 항상 품질도 같이 낮아져버려요. 그러면 고객 입장에서도, 서비스 제공자들 입장에서도 나빠지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걸 깨는 방법으로 ZUZU는 소프트웨어 툴을 줘요. 예컨대 등기 신청이라든지, 문서 작성이라든지요.

그러면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더 싼 비용으로 더 높은 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돼요. 제로섬 게임을 깨고 플랫폼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것도 결국 본질은 중간에 생산성을 실제로 높여주는 소프트웨어가 있느냐가 결정하는 거라서 저희는 생산성에 굉장히 집착하는 서비스예요.

갑자기 서광열 대표와의 첫 만남이 생각난다.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성장해나간다는 법무법인 미션의 비전과 가치를 듣고,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기본적으로 법률 서비스와 개발 서비스 모두 고객에게 받는 보수와 우리가 투입하는 에너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객과의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극복해 보겠다고 하시니 흥미롭네요.”

사실 그 ‘제로섬 게임’은 개발자로서 삶을 시작한 그가 계속 고민하던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가 사업을 통하여 해결해 보고 싶은 문제의 본질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창의성’

창의성은 조직에서 공유되고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중요 가치

함께하고 싶은 인재는 ‘성장하고 싶은 사람’, ‘본인의 기준이 높은 사람’

“창업을 하면 문제가 계속 눈앞에 있어요. 해결 과정에서 당연히 갈등이 있지만, 그걸 미루지 않고 꺼내서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중요하죠.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면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거든요. 비난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보태며 조금씩 더 좋은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ZUZU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인데요. 때문에 각 이해관계자들의 밸런스를 어떻게 조정하고 어떤 걸 표준으로 만들지 고민을 많이 하시는 걸로 보여요.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이용자들과의 소통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맥락 없이 소통하면 불편함이 다른 곳에 전가될 수 있어요. 고객이 불편하다 해서 바꾸면 갑자기 다른 고객이 불편하다고 하거든요. 이 불편함이 다른 곳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죠. 어느 한쪽이 희생해서 다른 곳이 이득을 보는 구조는 쉬워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창의성이 필요하고, 저는 그 창의성을 중요시합니다.

소통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일단 한번 참는 거? (웃음) 저분들도 불편하겠지. 그런데 이걸 다른 측에 전가하지 않고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고민해요. 감정 컨트롤이 중요하죠. 제로섬 게임은 서로에게 쉽게 화를 내거든요. 내가 불편한 게 저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어마어마한 희생을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한 시간 더 일하면 되지.’라는 생각 대신, 내가 한 시간 더 일하지 않더라도 해결되는 방법을 찾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한데, 제일 어렵죠.

창의성을 중요시 여긴다고 하셨는데, 창의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나요?

처음에 내는 아이디어들은 대개 평범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서 의견을 더해서 더 좋은 아이디어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필요하죠. 그게 공동창업자고, 회사에서 역할 해주시는 분들의 중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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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힘으로 창의성이 길러지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이를 조직 차원에서 공유하는 방법은?

우선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해요. 개인적인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집에서 넷플릭스 보는 것도 행복이겠지만,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해내고, 다음엔 더 큰 일을 해내고 싶어하는 사람이요. 성장을 해 본 경험이 중요하거든요.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면 회사가 일을 적게 시키는 것보다 많이 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더 빨리 성장할 테니까.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럼 같이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동의하는 사람이면 우리도 더 큰 성장을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것을 할 수 있는 힘은 회사의 비전과 미션에 있어요. 회사의 미션에 동의하는 사람이면 더 멀리 갈 수 있죠.

또 뽑고 싶은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그 다음엔 기준이 높은 사람. 본인의 기준선이 있어서 그 이하로는 못 내보낸다는 사람이요. 이게 없으면 대충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 기준이 있는 사람이 팀의 절대다수를 이루면 기준이 낮은 사람도 높은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사람을 뽑으려고 해요.

여기에 또 제로섬 게임이 안 되려면 충분한 보상을 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려면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하죠. 누군가를 희생시키면 안 되니까요.

이해관계인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도,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누군가를 ‘희생’시켜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업의 본질은 ‘제로섬 게임’의 극복이 아닐까,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마지막이 궁금하다.

누구나 편리하게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시장 꿈꿔

더 많은 주체들의 용이한 참여로 스타트업 성장에 도움되고자

코드박스의 마지막 모델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평소에 이렇게 비유를 많이 하는데요. 이제는 방송국이 유튜브나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처럼 바뀌어서 개인들이 본인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수익을 창출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런데 자본시장은 아직 폐쇄적이에요. 예를 들면 벤처캐피탈이 그런데요. VC들이 자기들끼리만 알고 같이 투자하고, 계약서 돌려 보면서 쓰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런데 빅하우스 캐피탈을 다른 곳에서 조달 가능하다면, 하우스 심사역이나 개인들이 자기 이름 걸고 LP 투자 유치해서 직접 스타트업 투자하는 시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그걸 하기 위해서 VC가 제공하는 자본과 백오피스가 떠올랐어요. 일단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백오피스인 거죠.

저희의 시작점이 개인투자조합에 대한 서비스였고, 다음 단계는 저희가 AC(엑셀러레이터)가 되든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가 되든 라이선스를 제공해서 LP를 모으는 플랫폼을 제공하자는 거였거든요. 우리가 일종의 증권사처럼 개인 펀드에게 우리의 백오피스든 LP든 자본이든 딜소싱이든 제공해서 자본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서 스타트업 투자 혹은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이 생태계가 커지는 만큼 플랫폼을 통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 이게 제가 현재까지 그리고 있는 최종적인 그림입니다. 물론 그 이후는 상상력의 한계로 아직 그리지 못하고 있어요. (웃음)

그렇게 되면 ZUZU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연못물이 강이나 호수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남에게 도움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거창한 꿈은 없어요. 일단은 지금 하는 비즈니스를 잘하고 싶습니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다르겠지만, 저는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느냐가 중요한 거 같거든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의미가 있고 계속하고 싶은 일인가? 지금은 이 일 말고는 없는 거 같아요. 이걸 푸는 것 자체가 생산적인 활동이고, 그 활동이 어렵더라도 (제게) 가장 만족감을 줘요.

겸손하게 마무리했지만,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비전이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와 경제의 본질적 한계인 ‘제로섬 게임’을 극복하는 데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가 아닌 모두가 더 좋은 효용을 누릴 수 있는 구조, 제로섬 게임의 극복은 혁신을 넘어서 혁명이 될 것이다.

성실한 혁신가 서광열 대표와 코드박스가 그런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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