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서 미국으로, 올곧의 냉동김밥 완판 신화

올해 상반기, 손예진 학생은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국 음식의 인기를 체감했다. ‘파이어 누들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로 유행했던 불닭볶음면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LA에 있는 ‘BCD Tofu House(북창동 순두부)’ 앞에는 현지인들이 순두부찌개를 먹으려고 줄 서 있었다. 가장 파급력이 컸던 음식은 냉동김밥이다.

“대형마트에 사러 가보니 1인 1김밥으로 구매 제한이 있었어요. 그나마 오후 1시부터는 다 품절이 되어서 ‘오픈런’을 해야 했어요. 구매 성공 인증샷을 SNS에 올리면 외국인 친구들이 아직 김밥이 남아 있는지 물어볼 정도로 인기가 많아서 신기했어요.”

트레이더 조(Trader Joe’s) 김밥, 줄여서 ‘트조 김밥’으로도 불리는 이 김밥은 2020년 설립된 식료품 회사 ‘올곧’에서 만들었다. 일본의 마키와 확연히 구별되는 음식이라는 설명과 함께 ‘Kimbap’이라는 명칭 그대로 미국 식료품 체인점 ‘트레이더 조’의 홈페이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출처 = 트레이더 조)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큰 한국 식품 브랜드는 단연 ‘비비고’다. 특히 만두, 죽, 국물 요리 같은 품목에서 강세이다. 비비고는 2016년부터 지난 25년 동안 1위였던 일본의 링링만두를 밀어내고 북미 만두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비비고 만두의 전 세계 연 매출은 2020년 기준 1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냉동김밥 단일 품목만큼은 올곧이 국내 최대 생산 기업이다. 2020년, 편의식품 개발을 시작한 올곧은 불과 3년 만에 냉동김밥 세계 1위 기업이 되었다. 2023년 5월, 미국 출시 10일 만에 약 250톤이 전부 동났고, 10월에 500톤을 추가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곧이 흥행하자 CJ제일제당은 일본과 호주에 ‘비비고 냉동 김밥’을 선보였다. 냉동식품 전문 기업 ‘우양’ 또한 미국으로 냉동김밥 수출을 시작하는 등, 중소기업과 대기업 가릴 것 없이 냉동김밥 수출 대열에 합류했다. 올곧이 냉동김밥 시장을 개척하고 ‘Kimbap’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도 생소한, 경상북도 구미에서 시작한 이 기업이 미국에서 김밥 완판 신화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겨냥

올곧은 사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뒀다. 창업자 이호진 대표는 “신선한 김밥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국내에서는 굳이 냉동김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올곧은 2022년 3월 선보인 대표 상품 ‘바바김밥’을 선보였다. 그리고 두 달 뒤인 5월부터 연말까지 베트남, 홍콩, 멕시코, 싱가포르, 태국 등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멈추지 않고 더 큰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꾸며 참가한 ‘2022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에서 트레이더 조의 바이어를 만나 미국에 수출할 기회를 얻게 됐다.

‘2022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에 참가한 올곧의 모습 (출처 = 올곧)

곧바로 성공 가도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미국 현지 진열대에 냉동김밥을 올리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까다로운 생산 및 품질 인증 절차를 밟아야 했고, 북미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제품 테스트를 수 차례 진행해야 했다.

급속 냉동 기술 및 디자인 특허

올곧의 김밥이 처음 알려지게 된 계기는 틱톡이다. 한국계 미국인 틱톡커 ‘세라 안’이 어머니와 함께 김밥을 먹는 영상이 조회수14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러자 너도나도 김밥 먹방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품절 대란으로 이어졌다. 이마트가 발 빠르게 올곧 김밥을 국내에 들여온 이후에는 미국에서 완판된 김밥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또한 줄을 이었다.

김밥을 맛본 사람들의 공통 반응은 ‘냉동식품인데도 김밥의 식감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한식당에서 김밥을 15달러에 사 먹을 바에는 3.99달러 냉동김밥을 먹겠어요. 맛은 똑같으니까요.” (틱톡커 dougdoesdelicious)

“냉동한 밥을 해동하면 특유의 이상한 식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건 굉장히 부드러워요.” (틱톡커 trinhdoesthings)

“냉동이어서 기대를 안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맛있네요.” (틱톡커 feelglish)

 

(출처 = 틱톡)

올곧이 신선한 김밥을 구현해 낸 비결은 ‘급속냉동’과 특허받은 ‘3단 트레이’ 기술이다.

이호진 대표는 참치 급속냉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급속냉동 기술을 도입했다. 냉동 식품의 식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식품이 어는 동안 수분이 증발해 조직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저온으로 급속냉동을 하면 수분막이 생겨 수분 증발을 최소화해 해동 후에도 냉동 전과 똑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올곧은 각 재료의 익힘 정도와 온도를 달리하며 맛과 식감을 비교한 끝에, 김밥에 최적화된 온도가 ‘영하 45도’란 사실을 찾아냈다.

또 다른 특징은 김밥이 담긴 트레이이다. 일반적인 사각형이 아니라 3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자레인지에서 해동될 때, 열이 골고루 전달되도록 제작한 특수 용기이다. 김밥 일부분은 차갑고 일부분은 뜨겁게 해동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올곧은 2022년 5월, 이 3단 트레이 디자인에 대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최상의 품질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현재의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올곧의 3단 트레이 (출처 = 올곧)

미국 소비자 트렌드 적중

아무리 좋은 기술로 만든 상품이더라도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올곧의 냉동김밥이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 식품 트렌드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두 축을 정확히 관통했기 때문이다.

먼저 ‘비건’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는 글로벌 비건 식품 시장 규모를 2021년 기준, 약 268억 3천만 달러(약 35조 8000억원)로 추정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10.41% 성장해서 2030년에는 654억 달러(87조 6033억원)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비건 트렌드를 이끄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관련 리포트 = Vegan Food Market Size, Share, and Trends 2024 to 2034 [Precedence Research])

또 다른 키워드는 ‘간편식’이다. 바쁜 일상에서 간편하고 빠른 식사 옵션인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대용식)’을 찾는 소비자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미국은 HMR 시장 글로벌 점유율 1위(26%)를 차지하고 있다(유로모니터[Euromonitor] 조사 결과).

이렇게 미국에는 ‘건강과 간편함’을 함께 추구하는 소비자가 많다. 올곧 김밥은 이런 소비자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 육류 수출 제약 때문이긴 하지만, 고기 대신 유부가 들어간 유부우엉김밥은 각 영양 요소가 비교적 균형 잡힌 메뉴이다. 또한 전자레인지로 조리할 수 있는 간편식이면서 맛도 뒤처지지 않았다.

종합하자면,
1. 냉동김밥의 가능성을 믿고 계속해서 해외 진출의 문을 두드렸고
2. 최상의 품질을 만들고자 생산 기술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3. 소비자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를 고루 갖춘 점
등이 모두 맞물려 지금의 올곧이 만들어졌다고 정리할 수 있다.

(출처 = 올곧)

올곧은 글로벌 F&B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는 11월, 2공장이 완공되면 김밥 생산량을 하루 8만개 수준인 현재보다 5배 늘릴 수 있게 된다. 올곧 측의 2025년 예상 매출액은 2000억원 수준이다. 올곧의 모회사인 ‘에이지에프’는 국내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곧의 성공을 지켜본 여러 F&B 스타트업도 당분간 더 커질 냉동김밥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식물성 대체육 전문 기업 ‘이노하스’는 미국 최대 규모 식품 유통사 ‘케헤(KeHE)’와 계약을 체결했다. 푸드커머스 플랫폼 ‘윙잇’이 2023년 9월에 미국으로 수출한 냉동김밥을 그해 12월에 약 22톤을 추가 수출했다고 밝혔다. 올곧에 이어 글로벌 냉동김밥 트렌드를 주도할 후발주자는 누가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인턴 기자 김성희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스타트업들의 고유한 비전과 차별화된 전략을 기사로써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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