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콜될뻔한 불닭볶음면의 부활…규제 외교의 힘

두개 제품군에 대한 리콜조치가 철회된 이후 업데이트된 DVFA 웹사이트 (출처=DVFA)

지난 6월 11일, 덴마크 수의식품청(DVFA)은 불닭볶음면 관련 상품 3종을 리콜 조치했다. ‘너무 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조치가 전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한국 라면의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덴마크는 약 한 달 뒤인 7월 12일, 그중 두 제품에 대한 조치를 해제하였다. 대다수 국가가 식품 관련 리콜 조치는 번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변화다.

DVFA가 리콜을 발표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즉각 국장급 실무진을 중심으로 민관 협력 정부 대표단을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그리고 캡사이신의 과학적 위해 평가 보고서와 제품 조리 과정 영상 등을 덴마크 측에 제공했다. DVFA는 식약처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위험성을 재평가했고, 리콜 대상 중 두 제품의 캡사이신 함량이 안전하다고 판단해 조치를 해제했다. 우리 정부의 ‘규제 외교’가 빛을 발한 순간이다.

규제 외교가 이룩한 성과들

규제 외교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제품이 원활히 수출되도록 무역 당사국의 규제기관과 소통 및 협력하여 돕는 활동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거버넌스나 다자간 협력에서 규제의 조정과 외교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용어 자체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규제 외교 노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식약처는 2010년대 초반부터 중국 당국과 구성한 ‘한중 식품전문가협의회’를 통해 식품 기준을 꾸준히 논의했다. 덕분에 생막걸리 망간 기준 삭제, 김치의 대장균군 기준 적용 제외 등 여러 식품 안전 기준이 개선되었다.

규제 외교의 성과는 근래 들어 더욱 돋보인다. 2023년 5월, EU는 한국산 라면 등 즉석 면류에 적용하던 ‘에틸렌옥사이드(EO) 관리강화 조치’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일부 품목에서 농약으로도 사용되는 EO의 반응산물이 검출된 여파로 2022년 2월부터 시행되었다. 이후 국내 라면 수출 기업들은 ‘EO잔류 기준 증명서’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 여파로 2022년 한국 라면 수출 성장률은 17.7%로 직전 3개년 평균인 39.5%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식약처는 대표단을 파견해 안전관리 정책을 설명하고, 주벨기에유럽대사관과 협력하여 규제 완화를 강력히 요청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8개월 만에 관리강화 조치가 해제됐다.

열처리 가금류 가공식품 수출이 가능하게 된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은 1998년에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한국산 가금류 수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 2023년 12월, 식약처가 EU 당국과 열처리 가금육 수출을 가능케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후속 조치를 거쳐 지난 8월부터 25년 만에 영국을 포함한 전 유럽에 열처리 닭고기 제품 수출이 가능해졌다. 현재 마니커와 비비고를 필두로 국내 HMR 삼계탕 제품이 유럽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니커F&G의 수출용 삼계탕 (제공=이지바이오)

이런 변화가 가져온 성과는 적지 않다. 식약처는 EU의 라면 EO 관리조치 해제를 발표하면서 수출 증대 효과가 1800만 달러(약 23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2023년 10월 기준, 라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0.7% 증가한 9290만 달러(약 1233억 원)를 기록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열처리 가금류 제품의 잠재 수출액이 유럽에서만 2000만 달러(약 266억 원)에 육박하리라 예상했다. EU의 식품 안전 기준을 준용하는 국가가 적지 않기에, 계량되지 않는 잠재적 성과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K-푸드 세계화를 위한 도전과제

지난달 1일 라면업계 해외 수출 간담회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오유경 식약청장 (출처= 식약처)

K-푸드 해외 진출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적지 않다. 국내 F&B 기업들의 숙원 중 하나는 돼지고기를 비롯한 육류 및 육고기 성분을 포함한 제품의 수출이다. 지난 8월 1일, 라면 업계 관계자들은 오유경 식약청장과의 간담회에서 ‘고기 성분이 함유된 제품 수출을 지원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육류 및 육가공 식품 수입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구제역 및 광우병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식품의약품청(FDA) 규정 및 ‘식품안전 현대화법(FSMA)’ 준수 여부뿐만 아니라, 농무부(USDA) 승인까지 필요하다. 설령 승인받았다 하더라도 가공육이 전체 성분의 2%를 넘겨선 안 된다. 일반 냉동 만두는 고기가 전체 성분의 70% 안팎을 차지한다. 냉동 김밥도 단백질 함량이 보통 10% 이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북미 등지에 수출하는 국산 만두, 냉동 김밥 등은 대부분 기존 육단백질을 식물성 단백질로 대체한 제품이다.

(출처=식약처)

(관련 보고서= 한국산 수출식품 부적합 동향 분석(’20~’22년))

규제 및 검역에 걸려 통관이 거부된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식약처가 발표한 ‘한국산 수출식품 부적합 동향 분석’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국산 수출 식품이 해외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례는 크게 감소했다. 전체 부적합 요인의 69.6%를 차지하는 ‘표시 기준 위반’ 영역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미생물과 식품첨가물 때문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례는 증가했다.

2022년 들어 미국 FSVP(Foreign Supplier Verification Program; 해외공급자검증 프로그램)를 위반해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례가 등장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FSVP는 ‘식품안전현대화법’의 하위 규칙 중 하나로 수입자가 해외 공급자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2020년 7월부터 일부 면제 대상을 제외한 모든 관련 업체에 전면 도입되었다. FSVP를 위반한 수입업자는 FDA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수입업자가 등재된 식품군뿐만 아니라 유사한 식품군도 통관 절차가 강화되거나 자동 억류될 수 있어 그 파급력이 작지 않다.

육류 성분 함유 제품의 수출은 기업 차원에서 돌파하기 힘들다. 근래에 문제가 되는 첨가물/미생물 검출 기준 문제나 FSVP 위반은 과거에 자주 보였던 표시기준 위반과 달리 기업 자체적으로 개선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만약 제재가 적용된다면, 그 여파는 특정 제품이나 기업 수준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따라서 식약처 등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규제 외교 노력이 더욱 중요한 상황이다. 식품 안전 기준을 개선하는 동시에, 국제적으로 한국 식품의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각국 규제 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빠르게 소통하여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선제적으로 규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협의 공동체 형성에 앞장서는 방안을 고려해 봄 직하다.

서울에서 5월 13~14 양일 간 개최된 아프라스 2024 (출처=식약처)

실제로 최근 식약처는 아시아-태평양 식품규제기관장 협의체인 ‘아프라스(APFRAS)’를 주도하고 있다. 아프라스는 식품 분야 글로벌 공통과제 해결과 규제조화 도모를 위해 2023년 설립된 조직으로, 대한민국은 아프라스 초대 의장국이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두 번째 회의에는 현재 한국, 중국, 호주 등 11개국 규제기관과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등 3개 국제기구가 참가했다.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의 성과와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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