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항해와 같다. 예측 불가능한 파도에 맞서야 하고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을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은 창업이라는 배에 오른 창업가에게 주어진 나침반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이준상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겸 창업지원단장이 있다.
의료 진단 플랫폼 기업 ‘더멘드 바이오시뮬레이터(The.M.E.D. BioSimulator)’를 설립한 창업가이기도 한 그는 올해 초, 창업지원단장으로 임명된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예비 창업가들을 다방면으로 지원하면서 지속가능한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이윤재관에서 이 단장을 만나 창업지원단의 사업과 학생 창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어떻게 창업지원단장이 되셨나요? |
사실 2024년이 연구년이라서 해외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보직 때문에 몇 번 취소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꼭 떠나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죠. 대만 가족 여행 때문에 인천 공항으로 향하던 중, 창업지원단장 제안 전화를 받았습니다. 해외 연구년은 가족과 약속했던 부분이라 고민했지만, 그 동안 했던 보직과는 다른 도전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제가 작년에 창업을 경험했다는 점도 매력을 느낀 이유 중 하나고요. 1주일 동안 고민한 뒤에 수락했습니다.
Q. 방금 말씀하신 단장님의 창업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헬스케어 기기가 있습니다. 이 장비로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이야 늘 했지만, 실행으로 옮기진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창업을 하신 부산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님과 공동 과제 제안서를 작성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분이 제게 ‘의사인 나도 창업을 했는데 공학 교수인 당신은 왜 안하냐’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에 일종의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창업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2023년 3월 창업했고, 올해 팁스(TIPS)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투자자를 만나 제품 시연을 할 예정입니다.
‘더멘드 바이오시뮬레이터(The M.E.N.D. BioSimulator)’는 환자 의료비 절감을 목표로 이준상 교수가 실험실 연구원들과 함께 만든 의료 진단 플랫폼 기업이다. 최초의 병원 중심 심혈관 질환 위험도 진단 소프르웨어 ‘CARDIOS’, 의료 이미지 자동 분할 및 분석용 독립형 의료 기기 소프트웨어 ‘MIAS’, 기계학습 기반 비침습적 요역동학 검사 소프트웨어 ‘N-UDS’ 등을 보유했다.
Q.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창업을 꿈꾸는 학생이나 연구진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들을 성장시켜 학교로 재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창업지원단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들어와 창업 전 단계에 걸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실제로 공간, 펀딩, 네트워크, 교육 프로그램 등 모든 영역에서 지원이 가능합니다.
더불어 기술 기반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기술 창업은 성공률이 일반 창업보다 매우 높은 80%에 달하고, 고용효과도 매우 큽니다. 정부에서도 관심있게 보고 있죠. 학생들이 큰 이상을 창업지원단의 지원을 받아 마음껏 펼쳐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Q.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표 사업들을 소개해 주세요. |
먼저 에스큐브 공간지원을 꼽고 싶습니다. 현재 에스큐브 1호점과 3호점을 창업지원단이 전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 20개 씩, 총 40개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놨습니다. 입주 기업은 공간 뿐만 아니라 투자 자금지원, 법인 설립 지원, 관계사 네트워킹, 각종 워크숍 및 포럼 참여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죠.
또한, 성상제 회장 기금 등 다양한 기금을 활용해 투자자 네트워크 구성 및 혁신 역량 발굴을 위한 IR 경진대회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합니다.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등 서울 서부권 대학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Q. 올해 새롭게 시작한 사업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기업가치분석센터’입니다. 초기 창업 기업에게 공신력 있는 가치 평가를 인증해줌으로써 투자 여건 마련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경영학과 교수이자 창업지원부단장이신 어준경 교수님이 센터장을 맡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약 100개 기업의 가치 평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기업 가치 평가를 원하는 기업에게 약 한 달 정도 평가 기간을 거친 후, 결과 리포트를 전달하는 형태로 운영 중입니다.
Q. 다른 대학 산하 창업지원단과 비교했을 때,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이 가지는 강점은 무엇인가요? |
연세대학교는 1998년에 대학 창업보육센터를 최초로 유치한 이후, 한국형 보육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리딩해왔습니다.
우선 서울시 및 서대문구와의 협업이 큰 강점입니다. 공동 보육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지속가능한 선순환 창업 에코시스템 구축 및 창업 성과를 창출해 대학 발전과 지역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탄탄한 동문 네트워크 또한 강조하고 싶습니다. 동문 기업가, VC, 전문가 뿐만 아니라 창업지원단을 통해 성공한 기업가들이 계속해서 선순환을 이뤄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업 초창기에 저희 지원을 받았던 ‘오픈놀’이 청년 창업 센터를 에스큐브 근처에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창업 환경 클러스터화가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죠. 여러 기관과 다양한 운영 프로그램이 모여 있어서 유기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은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이 유일합니다.
Q. 입주 기업을 평가할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보시나요? |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는 사업의 혁신성, 성장 가능성, 그리고 기술적 우수성입니다. 팀의 역량과 사업의 사회적 가치 또한 중요한 평가 요소입니다. 사회 경제적인 영향력을 고려하여 기업 대표자의 창의성과 도전성도 평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죠.
참고로 저는 편향성을 우려해서 평가에서 빠집니다. 만약 제가 가르쳤던 공과 대학 학생이 후보에 있다면,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산업 중점 교수님과 외부 평가 위원으로 팀을 구성해서 중립적으로 평가합니다.
Q.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에서 성장하고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어떤 곳이 있나요? |
보통 창업 후 결과물을 얻기까지는 10년 정도 걸린다고 하죠. 연세대학교가 창업선도대학 선정을 계기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 시점이 2011년인데, 2019년부터 유니콘 기업과 상장 기업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10년이라는 사이클에 딱 맞아 떨어지죠. 투자금에 대한 연회수 비용만 72.5억에 달합니다.
교육 플랫폼 미니인턴을 운영하는 오픈놀, 랜덤다이스를 만든 게임 회사 111%, 한국신용데이터, 도구 공간, 애니펜 등이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을 거친 후 크게 성장했거나 성장 중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Q. 창업지원단의 사업 방향성은 어떻게 되나요? |
먼저 해외 진출입니다. 창업지원단 소속 스타트업이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입니다. 지난 달 미국 유타주 지사와 상하원 의원이 연세대학교를 방문해 연세대 동문 기업가들과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IT 중심지로 떠오르는 유타주 측에서 연세대학교 동문에게 해외 진출과 관련하여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죠. 내년에는 기업들의 소프트랜딩과 유타 주 차원의 지원을 명문화해 서명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학생 역량 강화와 관련한 글로벌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올 여름에는 학생들을 선발, AI 스타트업 신메카인 캐나다 토론토에서 IoT 컴퓨팅 분야의 글로벌 창업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헬싱키대학교 총장님으로부터 AI, 바이오 헬스, 퀀텀 컴퓨팅 분야 관련 협업 제안이 와서 유럽 진출도 검토 중입니다.
해외 시장은 국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거대합니다. 창업가들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다방면으로 만들고자 노력 중입니다.
Q. 창업지원단의 향후 사업과 관련하여 학교 측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
창업센터에서 ‘단’으로 승격한 덕분에 창업지원단은 지금 총장 직속 산하 기관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제(창업지원단장) 위치도 교무위원급으로 올라갔죠. 특정 단과 대학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학교 측에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서도 본부 측에서 매칭을 잘 해주셔서 저희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고요. 무엇을 더 바라기 보단 지금처럼만 계속해서 힘써주시면 좋겠습니다.
Q.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창업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생에게 창업 경험이 어떤 의미로 작용할까요? |
‘실패 경험’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 학생 신분으로서 겪는 도전과 실패는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사회에서 겪은 실패는 큰 리스크가 있지만, 학생 때의 실패는 그저 경험으로 남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책상에 앉아서 공부한 내용과는 다른 차원의 실무적인 경험을 쌓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합니다. 교과서에서 나와 있지 않은, 직접 도전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실질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창업가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돛줄을 던져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저도 20대 때 두려움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실패해도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여러분은 창업지원단의 지원 안에서 마음껏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창업의 꿈을 가진 분들이라면 언제든지 창업지원단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인턴 기자 김성희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스타트업들의 고유한 비전과 차별화된 전략을 기사로써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