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전통주가 한류와 건강 트렌드에 힘입어 글로벌 주류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아직 완벽히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독특한 맛과 문화적 스토리텔링, 건강한 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 소비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수출도 2023년 352억 원을 기록하는 등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주 스타트업 ‘뉴룩’을 이끄는 김인지 대표가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흥미롭게도 새롭게 선보이는 브랜드 ‘SWRL’은 그동안 만들었던 막걸리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하드셀처(Hard Seltzer)’다. 하드셀처는 탄산수(Seltzer)에 알코올을 섞은 술이다. 저칼로리에 도수도 낮아서 최근 미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주류 카테고리다. 김 대표는 한국 전통주의 발효 기술과 문화적 가치를 하드셀처에 접목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SWRL은 ‘전통주의 재해석’과 ‘글로벌 시장 적응’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과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국 전통주가 가진 잠재력을 글로벌 무대에서 증명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힌 김인지 대표를 만나 SWRL 탄생 과정부터 현지화 전략, 향후 비전까지 들어보았다.
막걸리에서 하드셀처로, 과감한 피벗 결정
뉴룩은 주목받는 전통주 스타트업 중 한 곳이다. 설립 두 달 만에 더벤처스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했고, 2024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 팁스(TIPS)에 선정되었다. 저도수(4%) 제로당 막걸리를 앞세워 GS25에 입점했고, 한 달 만에 1만2000병이 판매되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막걸리의 현대화를 시도하며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밝혔다. 기존 이미지를 탈피한 세련된 디자인과 맛으로 주목받았지만, 시장 규모와 소비자 인식의 한계에 부딪혔다.
“한국에서 전통주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한계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전통주 시장은 분명히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규모가 작고 트렌드 변화가 빠릅니다. 무엇보다 ‘막걸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어려웠죠. 특히 젊은 소비자들에게 막걸리는 여전히 ‘할아버지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전통주의 가치와 매력은 분명했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이를 완전히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소비자 인식을 바꾸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시장 크기도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브랜드와 제품을 완전히 새롭게 재정의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한계를 느낀 김 대표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에서는 ‘맥주를 대체할 수 있는 가벼운 막걸리’라는 콘셉트로 성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미국에 이 제품을 그대로 가져가서 이야기하다 보니, 완전히 새롭게 도전하는 편이 더 가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미국 마트 주류 매대를 일일이 사진으로 남기고, 대학가 파티에 직접 참여하면서 음주 트렌드를 체감했다. ‘이제는 맥주 대신 하드셀처가 파티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변화를 실감했다. 막걸리의 특징이 이 시장에 적합하다는 확신도 얻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방적인 태도’였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맛과 스토리에 훨씬 열려 있더군요. MZ세대를 중심으로 저칼로리, 저당, 글루텐프리 등의 가치를 담은 주류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요. 무엇보다 발효 음료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막걸리의 자연 발효 과정과 프로바이오틱스 특성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지 소비자들과 직접 대화하고, 다양한 제품을 분석하면서 하드셀처 시장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40% 이상 성장했다는 데이터에 주목했다. 독특한 맛과 스토리를 가진 크래프트 브랜드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화이트클로’와 ‘하이 눈’ 같은 대형 브랜드가 하드셀처 시장을 선점하긴 했지만,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새롭고 차별화된 제품을 찾고 있었습니다. 리치, 매실 등 아시아 맛을 가미한 브랜드도 인기를 끌더군요. 한국의 발효 기술과 문화적 스토리를 담은 제품이라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팀원 설득과 조직 변화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팀원 전원을 데리고 LA로 날아가 마트와 식당 등을 돌며 제품, 디자인, 가격 등 세부 항목을 꼼꼼히 조사했다.
“미국 시장 진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동 창업자들과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성과를 더 내고 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시장 크기의 한계와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피벗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년에 회사에서 지출한 돈 중 가장 아깝지 않은 것이 출장비였던 것 같아요. 팀원들이 직접 현지를 경험하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SWRL: 문화를 흔들고 변화를 일으키는 브랜드
개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막걸리 발효 기술을 하드셀처에 적용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쳐야 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막걸리 특유의 두터운 맛을 낯설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극복하고자 시음 테스트를 반복했다. 그 결과, 드라이하고 청량한 맛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적으로 막걸리의 발효 과정을 하드셀처에 적용하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일관된 품질과 맛을 유지하면서도 미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깔끔한 맛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발효 기술과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SWRL의 핵심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김 대표는 SWRL을 만드는 과정이 단순한 제품 개발을 넘어, 한국 전통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여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순히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전통주의 가치를 글로벌 소비자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드셀처라는 형태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SWRL’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술잔을 돌려 향을 음미하는 ‘스월링(Swirling)’에서 영감을 얻었다. 막걸리처럼 흔들어 섞는다는 의미와 다양한 문화를 융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Swirl things up’이라는 태그라인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SWRL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섞어 마시는 행위를 넘어, 저희가 안정적인 한국을 떠나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죠.”
초기 라인업은 오리지널 막걸리, 얼그레이, 체리, 유자 등 네 가지 맛으로 구성했다. 미국 소비자는 드라이하고 청량한 스타일이 선호해서, 막걸리 특유의 무거움을 줄여 가볍고 리프레싱한 맛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김 대표는 “여러 맛을 고려했지만, 우선 4가지 맛으로 먼저 런칭하기로 결정했다”라고 귀뜸했다.
SWRL의 핵심 차별점은 ‘unfiltered(여과되지 않은)’이다. 막걸리처럼 뿌옇고, 따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unfiltered’는 SWRL의 가장 특징적인 키워드입니다. 사람들이 SWRL이라는 브랜드명을 기억하긴 어려울 수 있지만, ‘클라우디하면서 여과되지 않은 셀처’라는 특징은 쉽게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저도수, 저당, 저칼로리, 글루텐프리 등 건강 트렌드와 더불어, 발효된 쌀을 사용했다는 한국적인 깊이와 문화 스토리텔링에도 힘썼다.
“미국 소비자들은 ‘발효’라는 키워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막걸리는 아직 인지도가 낮지만, 오히려 이색적인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저희가 막걸리와 미국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진출지는 뉴욕, “새롭고 발칙한 경험을 선사하겠다”
SWRL은 미국 시장 진출의 첫 도시로 뉴욕을 선택했다. 김 대표는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뉴욕은 인구 밀도가 높고, 트렌드에 앞서 있으며, 문화적으로 많은 것들을 먼저 접하는 도시입니다. LA도 매력적이지만 뉴욕에서 바이럴이 되면 전국으로 퍼지기에 훨씬 유리합니다. 실제로 뉴욕은 세계가 앞서 있는 느낌, 좀 더 하이엔드하고 현대화된 것들이 많아 우리 제품을 소구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차 타깃 소비자층은 ‘컬처럴 얼리어답터(Cultural Earlyadopter)’, 즉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집단이다.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아시아계 미국인(AAPI) 대신 이렇게 타기팅한 이유는 무엇일까.
“컬처럴 얼리어답터들은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고, ‘unfiltered’라는 SWRL만의 특징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비자들입니다. 뉴욕의 AAPI 커뮤니티, LGBTQ 브런치, 코미디쇼 등 다양한 문화 집단과 협업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런 커뮤니티는 단순히 아시아계만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관심 있는 현지인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SWRL의 실험적이고 융합적인 브랜드 정체성과도 잘 맞습니다.”
유통 전략 역시 현지화에 초점을 맞췄다. 단독 매장보다는 B2B 엑스포, 한식당과의 협업, 그리고 온라인 B2C 판매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유통 채널을 먼저 뚫는 것보다,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원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월 중순에 B2B 엑스포로 시작해, 주말에는 뉴욕의 팬시한 현지인들이 많이 오는 한식당과 협업해 런칭 파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6월부터 8월까지 타이트하게 여러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소비자 수요를 먼저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2025년 매출 3억 원, 2026년에는 매출 50억 원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트랙션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를 믿고 함께할 파트너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면, 주류를 넘어 일반 음료 시장까지 확장할 계획입니다. 메이저 리테일에 최소 두 곳 입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2년 차에는 50억 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미국 현지 네트워크나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것도 전통주란 생소한 제품으로 진출하는 기업가로서의 고민과 조언도 전했다.
“주류 시장은 규제와 진입장벽이 높지만, 우리만의 명확한 차별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 글로벌 시장의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도전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성장하려면 누군가는 대중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SWRL의 브랜드 철학을 강조했다.
“제 명함에는 ‘Rules are boring. Drink shouldn’t be.’라고 쓰여 있습니다. 규칙은 지루하지만, 우리가 마시는 술은 지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존에 없던 새롭고 발칙한 경험을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막걸리란 본질은 유지하면서 현지 소비자에 맞게 재해석한 SWRL의 도전은 한 기업의 해외 진출을 넘어, 한국 전통주의 글로벌 가능성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다. 이 실험이 한국 전통주의 글로벌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뉴욕의 트렌디한 바와 파티에서 SWRL을 흔들어 마시는 모습이 일상적이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더프론티어 편집팀장. 기획자, 편집자, 기자로 일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