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구독의 시대. 삶 속에 ‘구독’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고, 쿠팡에서는 생필품을 구매한다. 구독 경제는 과거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Idaho)주 브리검영 대학교에 다니던 니콜라스 헵워스(Nickolas Hepworth), 김재현(Jae Hyun Kim), 아오이 쿠리키(Aoi Kuriki)는 이런 구독 경제의 성장 가능성과 함께 ‘지역 커뮤니티 기반 구독 플랫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세 사람은 ‘서빗(Subbit)’을 창업해서 직접 서비스를 선보였고, ‘아이다호 대학생 창업 경진대회(IEC, Idaho Entrepreneur Challenge) 2024’에서 1위를 수상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서빗은 지난 1월, 유타주에 있는 신흥 테크 허브, ‘실리콘 슬로프’를 새 거점으로 삼았다. 현재 아이다호와 유타를 중심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화상 미팅으로 만난 김재현 COO는 “지역 소상공인이 구독 상품을 직접 만들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실용적인 구독 관리 도구가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카페부터 헬스장까지, 상품 및 서비스 구독 관리 툴 ‘서빗’
Q. 서빗을 소개해 주세요. |
서빗은 이전까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가 없던 지역 소상공인들이 직접 구독 상품을 만들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온라인 툴입니다. 현재는 카페, 탄산음료 전문점, 반려동물 미용실, 자동차 세차장, 탁아소 등과 협업 중이지만, 일정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모든 업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구독을 설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서빗의 수익 모델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
수익 모델은 다양합니다. 판매자는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 요금제를 채택할 수 있습니다. 단순 거래 수수료부터 월정액까지 있습니다.
향후 수익 모델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한 가지 예시를 말씀드리자면, 서빗 플랫폼 내에서 자체 상점 페이지가 노출이 더 잘 되게끔 광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구글 광고와 유사합니다. 구글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Sponsored’라고 표시된 광고가 먼저 뜨죠. 이 기능을 원하는 판매자가 더욱 많아지는 시점에 도달한다면 시작할 계획입니다.
Q. 현재 어떤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까? |
저희는 아이다호에서 시작했고, 이후 유타로 이전했습니다. 현재 이 두 지역에서 활동 중이며, 향후 캘리포니아, 네바다, 워싱턴, 특히 시애틀 등 서부로 확장할 계획이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미국 전역, 그리고 해외로도 확장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종종 “이 서비스는 한국에서도 잘될 것 같다”라고 얘기해줘요. 저도 그 말에 공감하지만, 아직 한국 진출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할 때는 아닙니다.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계획 안에 있습니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일본인이라서, 일본 진출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유타와 아이다호에서 명확한 목표 수치를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먼저입니다.
Q. 지금까지 서빗을 도입한 업종 중, 고객 반응이 가장 좋았던 카테고리는 무엇인가요? |
가장 활발한 반응을 보인 업종은 카페와 ‘탄산음료 전문점(soda shop)’입니다. 탄산음료를 판매하는 탄산음료 전문점은 유타 지역의 특징인데요. 이 두 업종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협업하며 느낀 점은, 지역의 소상공인 스스로가 창업가라는 점입니다. 지역 커뮤니티와 밀접하고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중요시한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재방문을 끌어내는 데 관심이 높았죠.
구독 방문은 일정 주기마다 지속적인 소비를 전제로 하므로, 상품 ‘표준화’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표준화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업종별로 고려 사항도 다르고요. 예컨대 카페에 갔을 때, 항상 같은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고 하죠. 표준화된 옵션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반려동물 미용실은 견종과 털 길이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고요.
따라서 서빗은 각 업종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구독 도구를 제공하면서도 모두에게 기준점이 되는 균형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 창업, 비전가 CEO의 역할이 중요
Q. 왜 ‘구독 모델’과 ‘소규모 기업’에 관심을 두고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아이디어는 CEO(니콜라스 헵워스)의 경험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는 처음엔 단백질 보충제를 구독 방식으로 판매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플랫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고, 몇몇 동료가 합류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지역 소상공인이 충성도 높은 단골을 확보하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존 같은 대형 플랫폼이야 자원이 풍부하기에 구독 고객을 쉽게 확보하지만요.
사실 서빗의 첫 비즈니스 모델은 구독을 위한 마켓플레이스 형태였습니다. 아마존처럼 모든 지역 소상공인이 구독 상품을 팔고, 이용자는 다양한 상품을 탐색하는 플랫폼이죠. 하지만 초기 고객들의 피드백을 확인해 보니, 그들은 마켓플레이스가 아닌 ‘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비즈니스용 구독 관리 툴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Q. 창업 멤버들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팀이 구성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를 만들어냈는지 궁금합니다. |
저희는 아이다호의 작은 마을에 있는 대학교에서 만났습니다. 꽤 우연한 계기로 모이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모두 강한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었고, 각 분야에서 재능과 일정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술과 비즈니스 양쪽 경험이 있는 제너럴리스트이고, 다른 공동 창업자들은 기술, 마케팅, 세일즈 등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였어요.
이처럼 서로 다른 전문성을 바탕으로 회사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협업할지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해 왔습니다.
Q. 요즘 많은 대학생이 학교에서 팀을 꾸려 창업에 도전합니다. 실제 창업까지 이어지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CEO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더인 동시에 회사 전체에 대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자, 모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은 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혼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팀원은 ‘기업가’ 정신은 있되, ‘비전가’는 아니어야 해요. 한 팀에 여러 비전가가 있으면 결국 충돌하고, 분열하기 쉽거든요. 제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지만, 유타에 있는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이야기해 봐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더군요.
CEO는 ‘이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고, 이게 제품의 비전이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팀원들이 의견을 주는 건 좋고, CEO도 그런 피드백을 반영해서 비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로우면 안 됩니다.

네트워킹 기회 풍부한 유타 ‘실리콘 슬로프’
Q. 유타주로 사무소를 이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유타에서 스타트업으로 사업을 하는 데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
몇 년 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많은 기업이 유타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유타에는 ‘실리콘 슬로프’라는 새로운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인큐베이터와 스타트업 지원 조직도 많습니다. 샌드박스도 있고요. 아직 샌프란시스코처럼 자원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환경입니다.
다른 지역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많이 경험해 보진 않아 장단점을 명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유타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특히 대학생이나 청년층을 위한 자원이 많았어요. 네트워킹 기회도 많아 유리합니다.
저는 한국계 미국인인데, 유타에 저 같은 한국계 미국인 창업자들이 많아 그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쉬운 점도 장점이죠.
이처럼 유타는 스타트업에 매우 좋은 지역이라서, 이곳에 머무르며 장점을 누리고 싶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더라도 유타를 거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Q. 유타에서 제공하는 청년층을 위한 지원을 받고 계십니까? |
네, 어느 정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지원이라기보다는 멘토링 형태에 가까워요. 저희는 대부분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배워야 했습니다. 다행히 창업팀이 어렸을 때부터 비즈니스와 관련한 경험이 있었죠.
Q.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동네’ 개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지역 기반’ 서비스를 구축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
맞습니다. 또, 미국은 넓다 보니 주마다, 지역마다도 분위기가 다릅니다. 저는 서부, 동부,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중부까지 다 살아봤는데, 정말 모두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유타 같은 곳은 ‘입소문’이 훨씬 더 중요해요. 즉, 온라인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퍼지는 방식이죠. 반면 제가 자랐던 캘리포니아는 대부분 온라인 중심입니다.
Q. 그렇다면 지역 내 고객 충성도에는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고 계신가요? |
네, 그 부분은 저희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저희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어떤 방식이든 일단 첫 사용자 몇 명을 확보하고 그들이 제품을 정말 좋아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게 되거든요.
‘추천인 프로그램’ 도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소개하면 혜택을 주는 방식인데, 이런 구조를 통해 입소문이 퍼질 수 있도록 유도하려고 해요. 유타에서는 여전히 사람을 통해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거든요.
물론 미국 서부로 확장하게 되면, 지역 특성에 맞춘 전략을 고안할 생각입니다.

Q. 미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창업가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
제가 본 바와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네트워킹은 어디에서든 중요하지만. 미국, 특히 유타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투자 유치도 골프를 치거나 식사를 함께하며 신뢰가 쌓인 이후에 가능합니다.
한국도 어느 정도 비슷하겠지만, 여기서는 그 규모나 강도가 훨씬 크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미국의 유명 창업자들도 처음 자금을 받은 곳은 외부 투자자가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좀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 중 하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일찍부터 인맥을 넓히는 데 집중해야 했다’는 거예요.
Q.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핵심 과제와 서빗의 중장기 비전을 설명해 주세요. |
시장에 로컬 비즈니스들이 구독 상품을 직접 만들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구독 관리 도구는 시장에 없습니다. 서빗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지역 소상공인들이 과도한 수수료나 복잡한 절차 없이, 투명한 방식으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소비자가 구독 서비스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을 개선하고 신뢰 기반의 구독 경험을 만드는 것 또한 저희가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중 하나입니다.
현재 저희는 제품 피봇 과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목표는 고객 피드백을 기반으로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에요. 사용자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이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검증하고, 그에 따라 제품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선은 초기 사용자들이 제품과 저희 팀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 단계는, 유타 지역 내에서 설정한 주요 성과 지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유기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영업 및 마케팅 인력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고, 향후 3~5년 안에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미국 서부 지역으로의 확장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더프론티어 인턴 기자 이유진입니다. 사회 혁신을 이끄는 기업에 관한 글을 씁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을 깊이 있는 기사로 전달하겠습니다.